부실 계열사 지원 등으로 회사와 주주들에게 수천억원대 손해를 입힌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로 기소된 김승연(62) 한화그룹 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풀려났다. 한동안 기업 범죄에 대해 엄벌하던 법원이 과거 대기업 총수에게 흔히 선고했던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적용한 데 대해 한편에선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김기정)는 11일 김 회장의 파기환송심에서 원심(징역 3년과 벌금 51억원)을 깨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억원,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홍모(66) 전 재무팀장도 징역 3년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감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한화그룹 전체의 재무ㆍ신용 위험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우량 계열사 자산을 동원한 것으로 개인적 치부를 위한 전형적인 범행과 다소 거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1,597억원을 공탁했고 그동안 경제 건설에 이바지한 공로, 건강상태가 나쁜 점도 참작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계열사인 한유통ㆍ웰롭에 대한 연결자금 제공 및 지급보증 부분을 제외해야 한다고 보고 배임액을 1,585억원으로 확정했다. 항소심이 유죄로 본 1,797억원보다 다소 줄었다.
2011년 1월 불구속 기소된 김 회장은 2012년 8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된 뒤 지난해 4월 2심에서 배임액 축소와 피해액 변제 등이 참작돼 징역 3년으로 감형됐다. 그러나 건강 악화로 지난해 1월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뒤 줄곧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와 실제 4개월만 수감생활을 했다. 이후 김 회장은 지난해 9월 대법원이 원심 판단 일부를 파기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면서 추가 심리를 거쳤다.
이번 형량은 대법원의 양형 기준에는 크게 못 미친다. 대법원은 횡령 및 배임액이 300억원 이상일 때는 감경 요소를 감안한다 해도 징역 4~7년을 선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양형 기준은 강제력이 없어 기업 사주들에게 관대한 처벌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김 회장의 경우는 과거 폭행사건으로 처벌 받은 전력 때문에 형법37조의 '후단 경합범'에 해당돼 양형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후단 경합범이란 과거 A 범죄에 대해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그 판결 전에 저지른 B 범죄에 대한 재판을 추후에 진행하게 될 경우를 말하며, 개별 사건에 대해 양형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2007년 차남을 때렸다는 이유로 술집 종업원들을 보복 폭행한 혐의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이번 배임 등 범행은 폭행사건 전인 2004년부터 이뤄졌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형식논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법조계에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란 '재벌 양형 공식'이 부활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화그룹은 이날 선고에 대해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며 "오랜 재판으로 인한 경영위기를 극복함과 동시에 반성과 개선을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현재 판결문을 분석하고 있으며 재상고 기간 안에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