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판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숱한 오류와 역사 왜곡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의 최종 승인을 받은 것이 지난해 12월 10일이다. 그 뒤로도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자 교육부와 새누리당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운을 떼고 있다. 교육부의 교과서 편수(편집, 수정) 기능을 강화하고 6월까지 역사교과서 발행 체계 개선안을 확정하겠다는 발표에 이어 지난달 15일 교육부 장관은 국정교과서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11일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연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시대 착오적인 위험한 발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역사교육학회장인 양정현 부산대 교수는 "해석과 논쟁의 가능성을 막는 순간 역사는 죽고 역사 이야기는 도그마가 된다"고 지적하면서 "국정ㆍ검정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인정제, 자유발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교과서 국정화는 국가가 공인하는, 정확하게 말해 정권이 공인하는 하나의 역사만 가르치겠다는 발상"으로 "북한의 유일 주체사상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편수 기능 강화에 대해서도 국가의 개입이 강해져 학문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해칠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보다는 현행 검정 제도를 내실있게 운영해 불량 교과서를 막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이를 위해 역사학계, 역사교육학계를 망라한 독립적인 기구로 역사교육강화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양 교수의 발제에 토론자들은 국정화는 안 된다고 동의하면서도 역사 교과서 논란의 구체적 해법에 대해서는 조금씩 의견을 달리 했다. 신성호 전교조 참교육실 정책위원(고대부고 교사)은 검정 제도의 내실을 기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검정 제도는 교육의 자주성을 원천적으로 침해할 뿐 아니라 검정 기준과 과정에서 사회적 정치적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검인정이 아니라 곧바로 자유발행제로 가야 하며 자유발행제 아래서 교과서 선택권은 지금처럼 교장이 쥘 게 아니라 교육의 주체인 교사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소장인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도 "교과서 제도는 교육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국가의 개입을 경계했다.
양 교수가 발제한 역사교육강화위원회에 대해서는 이 기구의 성격과 역할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정부로부터 독립된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어 교과서와 교육 과정을 다룰 필요가 있다는 데 대해서는 공감이 있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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