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의 참을성과 침착함. 그것이 테크닉과 좋은 소리를 발굴하는 능력과 더불어 개별 연주자들의 에너지를 조율하는 마법의 고리를 잘 간수할 수 있는 힘이다."
이탈리아계 영국 지휘자 로빈 티차티(31)는 이 시대 가장 촉망 받는 젊은 지휘자 중 한 사람이다.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2005년)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2006년) 등에 최연소로 데뷔한 그는 "연주자와 무대를 향한 끝없는 관심과 주의"를 지휘자로서 성공 비결로 꼽는다.
사이먼 래틀과 다니엘 하딩에 이어 영국 음악계가 주목하는 샛별인 그가 2009년부터 수석지휘자로 활동 중인 스코티시 체임버 오케스트라(SCO)와 함께 처음 한국을 찾는다. 올해로 창단 40주년이 되는 SCO는 명망 높은 실내 관현악단이다. 따라서 23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내한 연주회는 전통과 젊음의 만남으로 눈길을 끈다. 특유의 정교한 연주로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서곡과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최근 프리츠 부슈(1890~1951), 비토리오 구이(1885~1975),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등 명지휘자의 뒤를 이어 글라인드본 오페라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으로도 취임한 그는 이메일을 통해 "SCO는 체임버 오케스트라 특유의 가슴 뛰는 음감을 지녀 이들이 없는 음악계는 상상할 수 없다"며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 가는 베토벤 교향곡 5번의 강렬한 경험을 한국 관객과 함께하고 싶다"고 첫 방한 소감을 밝혔다.
올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취리히 톤할레, 런던 심포니, 로테르담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등 명문 악단의 객원 지휘 일정도 예정돼 있는 그는 15세에 콜린 데이비스와 사이먼 래틀의 지도로 지휘를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작곡가였고 형은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 중인 전형적인 음악 가문에서 태어나 바이올린과 피아노, 타악기를 배운 티차티는 지휘를 시작한 계기에 대해 "한 가지 악기를 다루면서 음악에 담긴 이야기를 모두 전하는 데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휘는 내게 신이 선사한 선물과 같은 영예입니다. 지휘에는 결국 음악이 삶에 주는 영감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을 대하는 법을 배우는, 철학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는 세계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휘자 중 가장 어린 연령대에 속한다. 오랜 경력의 연주자를 아우르는 리더십에 문제가 없는지 궁금했지만 그는 "소통의 문제는 나이와 무관하다"고 잘라 말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연주자들을 통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70, 80년 경력의 지휘자도 같은 문제를 겪겠죠. 연주자와의 소통에서 생기는 어려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아름다운 대화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이번 공연에서는 지난해 런던 심포니와 함께 내한해 호응을 얻었던 포르투갈 출신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가 협연해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려 준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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