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등 인근 전신주. '청약통장 삽니다'는 광고 전단이 크게 붙어있다. 전단의 휴대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자신을 매매 브로커라고 소개한 한 남성은 부양가족과 통장가입기간, 무주택 기간 등을 물은 뒤 "납입액이 400만원이면 200만원 정도를 얹어 600만원에 살 수 있다"고 했다.
몇 시간 뒤 다시 통화를 시도하니 "해당번호는 결번"이라는 자동응답 메시지가 돌아왔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번호를 개통한 뒤 14일 이내에는 개통취소를 해도 수수료를 내지 않고 번호 해지를 해도 비용 부담이 없기 때문에 일주일 단위로 번호를 바꾸며 활동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이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청약통장 거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강남의 일부 재건축단지와 위례신도시, 대구, 보금자리주택 등 경쟁이 치열해 분양권 전매 프리미엄이 높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투기세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주택자인 김모(40)씨는 최근 1,000만원짜리 주택청약통장을 900만원의 프리미엄을 받고 브로커에게 팔았다. 당장 청약 계획이 없어 묵혀두고 있던 터에 원금의 두 배 가량을 받을 수 있다는 제안에 선뜻 응한 것. 김씨는 "불과 얼마 전만해도 청약통장을 사겠다는 광고를 보기 힘들었는데 최근에 갑자기 늘어난 것 같다"며 "원금의 거의 두 배를 건진 셈"이라고 말했다.
매매업자들은 이렇게 사들인 청약통장으로 실제 아파트 청약에 나선다. 우선 통장 보유자의 이름으로 인기가 높을 것으로 보이는 아파트에 청약을 한다. 당첨되면 최소 수백만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웃돈을 붙여 분양권을 되팔아 이득을 챙긴다. 직접 청약에 나서는 대신에 청약통장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을 연결시켜주고 수수료를 챙기기도 한다.
물론 이 같은 주택청약통장 거래는 모두 불법이다. 국토교통부는 2012년 청약통장 매매 광고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마련해 광고만 해도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또 적발 시 계약이 무효가 되고 최대 10년간 청약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청약통장매매만으로 처벌된 적이 없다는 게 문제다. 작년 7월 서울시가 25개 자치구와 합동으로 특별점검을 실시한 것이 유일한 단속 사례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합동 단속으로 총 5건을 적발해 경찰에 넘겼지만, 대포폰을 사용해 추적이 어려워 처벌하지는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약통장 매매와 함께 일명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자)'도 다시 등장했다.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작년 12월에 서초구 한신1차를 재건축한 '아크로리버파크' 분양 경쟁률이 40대1이 넘었다"며 "투기꾼들이 떴다방 등을 차려 청약통장을 대거 사들인 후 분양권 매물을 팔면서 시세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떴다방'이 과열을 부추기고 있다는 얘기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팀장은 "가점제가 적용되는 중소형아파트의 경우 분양 시 경쟁이 치열하다"며 "투기세력의 불법 전매는 결국 실수요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이대호 인턴기자 (서강대 미국문화학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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