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한국 사회의 최대 인기상품은 아파트였다. 국민의 반 이상이 살고, 나머지 대부분도 선망했던 집. 그러나 수년째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아파트 생활에 대한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특히 층간 소음은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잠이 들까 말까한 밤중에 윗집의 쿵쾅거리는 소리에 뜬 눈으로 지샜거나, 다른 집에서 크게 튼 음악소리 때문에 시험을 망쳤다는 자녀의 핑계를 들었을 때, 분노를 넘어 살의까지 느꼈다는 경험담도 종종 듣는다. 통계적으로도 층간 소음으로 인한 분쟁과 민원이 지난 1년 사이에 2.2배나 증가했다. 이웃 간 불화는 물론이며 신경 쇠약이나 분노 장애와 같은 병리 현상을 유발하고, 폭행과 살인까지 발생하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건축계에는 층간소음 문제에 대해 농담 같은 세 가지 해결책이 떠돈다. 가장 미련하고 효과가 적은 방법은 소음을 차단하려는 방음공사이고, 그보다 좀 나은 방법은 때마다 찾아가 따지고 그래도 안 되면 싸우라는 것이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그저 참고 사는 것이다. 소음 방지 매트 등으로 보강해도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에 기술적 해결보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한다는 반어법이다.
층간 소음의 근본적인 원인은 각 층 사이의 바닥판 공사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벽이나 바닥이 무거울수록 소음이 줄어든다는 것은 기초적인 상식이다. 바닥판을 210mm 정도로 두껍게 하면 소음을 차단할 수 있는데, 요즘 아파트는 대개 그 절반 두께이다. 또 하나의 원인은 진동이다. 다른 소리보다 유독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충격음이 거슬린다는 건 소리가 커서가 아니라 울리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는 기둥식 아파트가 지어졌지만, 이후에는 벽식 아파트가 주류가 되었다. 문제는 기둥식 보다 벽식 아파트가 진동과 소음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불편하기는 하지만 소음은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정부는 층간 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았다. 소음의 최대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을 넘게 되면 피해자에게 금액으로 배상하라는 것이다. 주간에는 40데시벨, 야간에는 35데시벨이고, 최대 114만원을 배상 기준으로 정했다. 이 방안을 악용한다면, 그 정도 내면 마음껏 쿵쾅거려도 된다는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근본적인 해결은 층간 바닥판을 두껍게 하고 기둥식 구조로 시공하는 것이지만, 일단 건설이 끝난 아파트에 보강공사는 불가능하다. 왜 우리 아파트 건설자들은 이 초보적 상식을 무시했을까? 바닥판을 두껍게 치고 기둥식 구조로 하면 건설비가 비싸지기 때문이고, 더 큰 이유는 아파트 내부면적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아파트 건설의 유일한 목표는 최소 투자로 최대 이윤을 내는 것이지, 주민 생활의 안락함 따위는 고려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음을 유발하는 주민이나, 이를 못 견디는 주민 모두 피해자이다. 배상은 주민 간에 할 것이 아니라 원인 제공자인 건설자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층간 소음은 하자 보수 대상이 아니어서 제도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새로운 기준을 정해도 소급 적용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웃 간에 금전 배상으로 문제를 덮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모든 것을 계산하고 거래하는 삭막한 풍경을 연출하고, 공동주택인 아파트가 그나마 유지하던 공동체 의식은 파괴될 것이다.
층간 소음을 계기로 오히려 이웃의 형편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가 아닐까? 윗집 아이의 습성을 파악하고 아랫집의 민감함을 이해한다면, 서로 상생의 협약을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소음 발생 시간을 약속하고, 때때로 식사라도 대접한다면 미안함과 분함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당사자 간에 해결이 어려우면 자치적인 중재도 가능할 것이다. 경기 광명의 한 아파트는 '층간소음 갈등해소 지원센터'를 통해서, 환경공단은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를 설립해 적극적 중재에 나서고 있다. 층간 소음 해결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문화를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소음은 원인일 뿐이고 갈등과 싸움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참고 살라는 것 아닌가? 별 뾰족한 대안을 찾기 어려운 문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ㆍ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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