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은 물리학의 공간화된 동질적 시간 개념에 반대하며 '지속으로서의 시간'에 주목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비판한 것도 그의 논리가 아니라 시간을 공간 좌표 위에 잡아두고자 하는 물리학의 오류를 지적하고자 했던 시도였다.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와 과학자의 논쟁이 평행선을 그리며 일단락된 지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두 천재의 관점을 하나의 틀 안에 놓고 이야기하는 책 가 출간됐다. 저자는 엉뚱하게도 철학자가 아닌, 1984년 단편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로 등단해 등을 내놓은 소설가 김영현(59)이다.
30년간 소설 창작에 몰두해 온 그가 베르그송과 아인슈타인의 논쟁을 재점화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는데 철학과 문학을 같이 하다 보니 문학적 설명으론 부족한 것이 많아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운동에 가담한 죄로 투옥됐던 1977년 겨울, 좁고 추운 감방에서 '시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색하기 시작한 지 30여년 만에 시간에 관한 철학서를 직접 쓰게 된 것이다. 1999년 발표한 단편 '개구리'를 통해 철학적 관점의 시간을 다룬 적이 있지만 "정신과 의사들 빼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썼다"고 그는 말했다.
김영현은 '과학적인 동시에 철학적인 시간 해석이 가능하지 않겠나 하는 가정'에서 사유를 시작했다고 서문에 적었다. 베르그송과 아인슈타인의 관점을 하나의 틀 속에서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글을 써가면서 그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철학과 과학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전혀 다른 현상에 기초해 사용하고 있으며 시간이란 철학적 해석이나 접근법에 의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저자의 결론처럼 이 책은 결국 아인슈타인이 아닌 베르그송의 손을 들어주며 '지속으로서의 시간' 개념을 되찾아오려 한다. 아인슈타인은 유일한 절대시간을 부정하면서도 존재 밖에 있는 객관적 시간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르그송은 시간을 사물과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으며 사물 속에 시간 자체가 내재돼 있고 존재 자체가 시간적 개념을 지닌다고 봤다. 김영현은 "과학적 시간은 자기동일성이라든가 연속성, 통일성의 문제와는 무관한 '운동에 관한 설명 방식'"이라며 "변화하는 주체의 자기동일성, 연속성, 통일성을 가능케 하는 '지속으로서의 시간'"에 주목하라고 주문한다.
그렇다면 한 사물이 '자기됨'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서 통일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세 살 때의 '홍길동'과 서른 살 때의 '홍길동'의 연속성과 통일성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유지되고 어디에서 끝이 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김영현은 책 말미에 "'자기동일성'의 근거가 되는 '통일성'에 대해서는 끝내 충분한 답을 하지 못한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철학자도 답하기 어려운 주제에 뛰어든 것과 관련해 그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요즘 철학자들은 개념의 숲에 갇혀 큰 덩어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문인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이 나왔을 때도 과학주의가 팽배했는데 지금은 더 심합니다. 철학의 빈곤 시대죠. 문학 자체가 인문학적인 역할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이 모든 학문에 관심을 갖고 대가가 되려고 해야 독자에게 할 말이 있게 되는 겁니다. 제가 우리 나이로 올해 예순인데 인기 위주보다는 남길 만한 공부를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습니다. 철학 전공자들이 제 책을 보고 더 정밀하게 사유한 결과물을 내길 기대합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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