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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2월 12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함정

입력
2014.02.1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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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로 병원을 찾아도 진료비가 수 십만원이 드는 미국이나 예약해 둔 진찰 날짜를 기다리다가 감기가 다 낫는다는 영국에서 생활해본 사람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제도가 꽤 괜찮다고 여기곤 한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평가는 감기 같은 가벼운 질병으로 병원을 찾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중한 병으로 장기간 입원을 하는 경우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병실료(1~5인실)와 간병비, 그리고 선택진료비로 인해 의료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결국 가족을 잃고 큰 빚까지 떠안는 일이 드물지 않다. 11일 정부가 밝힌 3대 비급여 개선 대책은 이처럼 재난과도 같은 의료비 부담의 주범을 잡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3대 비급여는 '꽤 괜찮다고 여겨지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를 지탱해 온 편법이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보재정으로 병원에 지급하는 금액인 보험수가를 낮게 억제하는 대신 대형 병원들은 비급여 항목을 키워 부족한 수입을 충당해왔던 것이다. 말만 선택진료비일 뿐 대형 병원에선 의사 10명 중 8명이 선택진료비를 내야 하는 특진의사로 지정돼 있고, 비어있는 병상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2인실, 3인실을 이용해야 하는 식으로 구조화돼 있다. 간병비까지 3대 비급여로 국민들이 지출하는 의료비가 연간 4조~5조원으로 추정된다. 국가가 주도해 건강보험을 강제 적용하되 비용이 적게 드는 질병을 우선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건강보험 재정으로 환자들의 부담을 크게 경감시키겠다는 대책은 결과적으로 보험료 인상을 피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의 발표대로 매년 1%씩 인상하는 수준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국민들은 '의료비 폭탄'을 피할 수 있는 대가로서 감내할 만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함정은 곳곳에 있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보건의료 공약이 이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약 중에는 역시 환자 가계에 큰 부담이 되는 4대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 강화 대책이 포함돼 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임기 동안 써야 하는 건강보험 재정 규모(8조9,900억원)는 3대 비급여 대책 소요 재정(4조6,000억원)의 두 배는 된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의 진전으로 자연적으로 증가할 건강보험 재정 지출도 만만치 않다. 건강보험 재정은 현재 약 8조원의 적립금이 쌓여 있어 당장 융통할 수는 있겠지만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자마자 재정파탄에 이르게 하지 않으려면 재정 흑자를 갉아먹는 것도 신중해야 할 일이다.

또 다른 함정은 새로운 제도가 불러일으킬 의료 수요의 증가다. 입원료와 진료비가 크게 떨어지면 지금은 병원에 가지 않던 환자까지 손쉽게 진료를 받고 입원을 해 대형 병원에 몰릴 환자 수가 예상을 크게 웃돌 가능성이 있다. "정책의 성패는 결국 탄력성 예측의 문제"라는 말이 있듯이 이번 정책으로 인해 늘어날 의료이용량 예측이 빗나가면 소요 재정 확보 계획도 엉망이 되고 만다. 유권자들을 유혹했던 공약의 실현은 실로 엄혹하기만 하다.

복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높고 필요 재정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이 시점에, 우리는 의료제도의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중증질환과 대형 병원 중심의 의료비 지출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메우려 들지 말고, 질병을 키우지 않는 예방의학적 노력을 기울이고 여기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이다. 주치의 제도를 활성화해 환자의 병세가 더 악화하기 전에 동네 의원들이 조기 진단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합병증으로 수술을 하지 않도록 당뇨를 관리하는 것은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이거니와 국가의 의료비 총액을 줄이는 아주 경제적인 방법이다. 문제는 그 효과가 수 십년이 지나야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런 장기 비전을 세우고 추진할 정권을 국민이 우선 선택해야 한다.

김희원 사회부 부장대우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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