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을 노리는 남자, 모태범(25ㆍ대한항공)이다. 모태범은 11일(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2014 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1, 2차 레이스 합계 69초69, 4위로 골인해 올림픽 2연패 달성에 실패했다. 승부의 세계에서 패자는 말이 없고, 패인은 수만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모태범에겐 좀 다른 ‘승리 방정식’이 있다.
손자병법에 비유하면 ‘성동격서’(聲東擊西)다. 동쪽을 향해 공격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다가 정작 서쪽을 치는 전략이다. 모태범의 주종목이 1,000m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4년전 밴쿠버올림픽 500m 금메달은 ‘우연’이었다.
모태범은 경기 후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없이 공동취재구역을 빠져나갔다. 케빈 크로켓 코치는 “오늘 경기는 모태범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스케이팅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은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모태범의 이날 기록은 밴쿠버 때 보다 더 향상됐다. 밴쿠버에선 1,2차 시기 합계 69초82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소치 올림픽 통과기록은 69초69였다. 0.13초 단축이다. 하지만 평소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된 ‘슬로 스타트’에 발목이 잡혔다. 500m는 스피드스케이팅 최단거리 종목이다. 스타트에서 메달 색깔 50%가 결정되고, 코너링 테크닉과 파워에서 나머지 50%가 좌우될 만큼, 출발 비중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모태범은 중ㆍ후반 지구력과 가속도에 승부를 거는 스타일이다.
모태범은 1차 레이스 100m를 9초68에 통과했다. 상위 5위권에 속한 선수 가운데 가장 느렸다. 2차 레이스 역시 9초63에 100m를 끊었다. 0.05초 줄이는데 성공했지만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줄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1,000m는 다르다. 느린 출발을 만회할 충분한 거리와 시간이 있다. 모태범은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입버릇처럼 “1,000m가 목표다”라고 말해왔다. 실제 그는 500m보다는 1,000m에 중점을 두고 훈련을 해왔다. 모태범은 소치 입성 직전 네덜란드 헤렌벤 전지훈련에서도 1,000m에 포커스를 맞췄다. 모태범은 “1,000m를 앞두고 마지막 400m를 버틸 수 있는 체력 보강이 전지훈련의 목표”라고 강조한 바 있다.
모태범의 걸림돌은 ‘흑색 탄환’ 샤니 데이비스(32ㆍ미국)다. 그는 1,000m에서 올림픽 3연패를 노리고 있다. 데이비스는 1,000m와 1,500m에서 모두 8차례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울 만큼 압도적인 기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500m 레이스까지는 모태범이 훨씬 빠른 페이스다. 데이비스는 전날 500m에서도 1,2시기 합계 70초98로 24위에 그쳤다. 모태범의 금빛레이스 해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데이비스를 600m까지 격차를 벌려놓고 체력을 유지해 마지막 버티기에 들어간다는 계산이다.
크로켓 코치는 “600m까지 적어도 0.7초의 격차를 벌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모태범은 실제 이 방법으로 효험을 봤다. 2013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4차 대회 1,000m에서 데이비스를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소치=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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