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여행] 한나절 훌쩍 떠나는 파주 여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여행] 한나절 훌쩍 떠나는 파주 여행

입력
2014.02.11 05:17
0 0

마치 다 아는 냥, 늘 ‘거기 뭐 볼 게 있어?’하며 의심했는데, 가보니 볼 게 제법 많았다. 경기도 파주 이야기다. 밸런타인데이에 사랑하는 사람과 거닐 한갓진 장소 찾는 중이라면, 봄방학 앞두고 아이랑 어디 가볼까 고심하고 있다면 이 땅을 한 번 뒤적거려본다. 호젓한 절집과 숲길, 서정적인 해넘이, 조선왕릉,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 명재상 황희…. 고운 풍경, 역사이야기 가득하니 서울에서 다녀올만한 한나절 여행지로 참 괜찮다는 생각 하게 된다. 그리고 다녀오면, 또 알찬 여행지였다고 느끼게 된다.

● 치열한 역사, 적요한 숲…파주삼릉

파주삼릉에서 출발한다. 조리읍에 있다. 공릉, 순릉, 영릉이 모여 있어 삼릉(三陵)이다. 사위 적요한 숲길 따라 가면 세 능들이 차례로 나온다. 고실고실해진 흙길 밟으며, 겨울 끝자락의 숲을 거닐어 본다. 겨울 숲에서는 녹음이나 단풍이 아닌 새와 바람이 주인공. 청명한 새소리, 바람소리가 망자의 넋을 위로한다. 이 소리들 어찌나 맑은지, 귀 쫑긋 세우면 산 사람의 생채기도 아물 것 같다.

숲길 끝에서 만나는 봉긋한 봉분들. 공릉은 조선 8대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의 능, 순릉은 9대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의 능이다. 영릉은 진종과 효순왕후의 능이다(대한제국 때 순종에 의해 황제와 황후로 각각 추존된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능의 곡선을 음미하고, 제를 올리는 정자각도 호기심에 들여다본다. 능이 갖는 묵직한 시간의 무게가 마음 참 차분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조선 왕족의 무덤은 모두 119기가 남아있다. 능이 42기, 원이 13기, 묘가 64기다. 왕과 왕비의 무덤이 능이다. 왕세자와 왕세자빈, 왕의 친척들의 무덤은 원이라고 한다. 나머지 왕족의 무덤은 그냥 묘다. 그리고 42기의 능 가운데 40기가 남한에 있다. 나머지 2기는 북한개성에 있는 제릉(1대 태조 원비 신의왕후의 능)과 후릉(2대 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이다. 별 것 아닌 듯 보이지만, 500년 넘는 한 왕조의 무덤이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다.

능 앞에서 서서 눈 감고 숨 깊이 들이켜 본다. 조각조각 단편의 이야기가 떠오르더니 결국에는 대하드라마가 된다. 장순왕후와 공혜왕후는 그 유명한 계유정난의 설계자, 한명회의 딸들이다. 수양대군이 조카인 6대 단종에게서 왕위를 빼앗으려고 일으킨 쿠데타가 계유정난. 이게 성공을 거두고, 후에 두 딸을 각각 예종과 성종에 들이면서 당대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되는 한명회다. 왕좌에서 밀려난 단종은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나, 17세에 사약을 받는다. 권력을 둘러싼 역사의 명암이 이 고즈넉한 풍경에 오롯하다. 진종은 21대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다. 뒤주 안에 갇혀 굶어 죽은 사도세자의 이복형이 그다. 무덤은 형의 무덤인데, 생각은 권력의 비정함 앞에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동생에게로 향한다.

역사는 한없이 치열한데, 이것 보듬은 숲은 끝없이 고요하다.

● 바위에 새긴 인연…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용암사에 들른다.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 기슭에 있는 절집인데, 이곳 석불은 알현해야한다. 대웅보전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우람한 바위에 조각된 두 기의 석불이 느닷없이 나타난다. 어깨를 견주고 선 이른바 ‘쌍미륵’. 동그란 갓을 쓴 석불은 손에 연꽃을 들었고, 네모난 갓을 쓴 다른 하나는 굳게 합장했다. 정식 이름은 용미리 마애이불입상(보물 93호)이고, 고려 때 새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가늘고 긴 눈, 평평한 콧잔등과 큰 코, 꾹 다문 큰 입이 큼직큼직하다. 17m가 넘는 당당한 풍채를 가졌지만 토속적인 표정이 하도 온화해서 잠깐만 바라봐도 절로 미소 짓게 된다. 얼굴 곳곳 패인 흔적은 한국전쟁 때 생긴 총탄자국이다.

석불은 아이 낳게 해 주는 기도처로도 잘 알려졌다. 깃든 전설이 이렇다. 자식이 없던 고려 선종이 원신궁주를 세 번째 부인으로 맞는다. 궁주의 꿈에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틈에 사는 사람들인데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한 후 사라진다. 그래서 알아보니 이 자리에 큰 바위 둘이 있고, 여기에 선종이 불상을 새기니 그 해에 왕자가 태어났단다. 이승만 대통령의 도 이곳에서 기도 후 득남했다고 전한다. 절집 요사채 옆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세웠다는 동자상과 칠층석탑이 있다. 석불 주위도 돌아본다. 뒤에서 보면 석불의 머리만 보이는데, 마치 한 쌍의 탑 같아서 또 한 번 웃음 짓게 된다.

나란히 선 모습이 어찌나 다정해 보였던지, 옛 사람들은 연꽃 든 석불이 ‘남자’, 합장한 석불이 ‘여자’라고 믿었다. 인연 소중한 것, 쉽게 잊어버리는 요즘이라 마음 더 끌리는 모습. 돌덩이로 맺은 현세의 인연, 내세에서도 천년만년 변함없으라 응원해 본다.

●가람 고운 절집…보광사

광탄면 영장리 고령산 기슭 보광사도 가본다. 신라(894년) 때 도선국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퇴색한 단청, 민화 형태의 벽화가 우아한 대웅보전을 둘러보고, 만세루에 걸린 목어도 구경한다. 대웅보전 편액(문 위에 거는 액자)은 조선 영조가 친히 쓴 것으로 알려졌다. 대웅보전 맞은편 만세루의 목어는 소설가 이외수의 산문집 ‘하악하악’에 등장하는, 화려하고 멋진 그 목어다.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위패가 있는 어실각도 찾아본다. 절집 뒷마당 한 구석에 있는데, 한 칸 규모지만, 보기에 단단하고 색이 참 곱다. 배우 한효주가 주연 맡았던 드라마 ‘동이’의 실제 주인공 동이가 숙빈이다. 무수리출신으로 조선 숙종(19대 왕)의 후궁이 돼 영조를 낳는다. 영조는 어머니가 죽자 보광사 인근 소령원에 묻고 이 절집을 추도사찰로 승격시킨다. 영조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지금도 어실각을 지키고 섰다. 이 풍경 참 애틋하다.

마당 걸으며 풍경소리, 독경소리 들어보고, 절집 뒤에 있는 전나무 숲도 걸어본다. 눈(雪) 없어도 산사의 겨울 풍경, 참 맑고 깨끗하다. 연인들 숨어들기에도 괜찮은 절집이다.

●율곡의 진실한 외침…자운서원

법원읍 동문리 자운서원으로 간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다. 율곡 이이하면 강원도 강릉 오죽헌 떠 올린다. 외가가 있던 강릉에서 태어난 덕이다. 그런데 그의 본향은 파주다.

자운서원에 들어 학문 가르치던 강당과 학생들 머물던 동재, 서재를 둘러본다. 강당 양쪽에 느티나무에 시선이 집중된다. 둘 다 수령이 400년을 훌쩍 넘겼는데, 몸뚱이가 어찌나 우람한지 건물을 압도한다. 겨울이라 이파리 다 떨어졌는데도 이렇게 신령스러운데, 잎 무성할 때는 얼마나 더 할까 기대가 하늘을 찌른다.

율곡은 저 당당한 느티나무처럼 터럭만치의 흔들림 없이 민생을 외쳤다. 그리고 개혁과 실천을 중시했다. 요즘도 민생 외치는 정치가들 참 많다. 그러나 율곡의 외침만큼 무게와 진실이 느껴지는 목소리는 드물다.

강당 뒤 건물이 이이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문성사, 문성사 입구에 자리한 묘정비는 우암 송시열이 짓고 곡운 김수증이 썼다는데, 아주 명필이다. 율곡의 가족 묘역이 서원 옆에 있다. 함께 둘러본다. 율곡과 그의 신사임당의 묘가 여기에 있다. 묘역 들머리 소나무 숲이 참 울창하다.

시간 나면 화석정도 가본다. 파평면 율곡리 임진강변에 있는 정자다. 자운서원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 율곡이 관직을 떠나 말년에 즐겨 찾았던 정자다. 원래의 정자는 한국전쟁 때 없어지고, 지금의 것은 1960년대 다시 지은 것. 발아래로 보이는 임진강의 물줄기가 유려하다. 그도 이곳을 찾아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단다.

● 갈매기 날아드는 소박한 정자…반구정

늦은 오후에는 반구정으로 간다. 문산읍 사목리에 있는 반구정은 방촌 황희가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 벗 삼아 여생을 보내려 지은 정자다. 청백리의 대명사이자 20여년간 영의정을 맡아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던 조선조 최장수 명재상이 황희다. 소신과 원칙, 관용과 배려의 미덕이 절실한 요즘이라 그의 인품이 새삼 부럽다. 부와 명예를 마다하고 그는 이 소박한 정자를 오르내리며 말년을 즐겼다.

야트막한 구릉 위에 세워진 정자에 올라본다. 발아래 흐르는 임진강이 유려하고, 그 너머 보이는, 독수리 월동지로 유명한 장단반도의 풍경이 천연하다.

해넘이도 예쁜데, 반구정은 동절기에는 오후 5시에 문을 닫으니 정자에선 이것을 볼 수 없다.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반구정 옆으로 언덕 넘어가면 ‘임진강나루’라는 음식점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그 멋진 해넘이 볼 수 있다.

●평화 내려앉은 임진각 평화누리

반구정에서 문산읍 마정리에 있는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이 가깝다. 내쳐 북쪽으로 달려본다. 분단의 상징을 평화와 통일, 화해와 상생의 상징으로 만들고자 조성된 공간이 이곳이다.

바람의 언덕을 걸어본다. 사진촬영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이미 명소가 된 곳. 이스트 섬의 모아이상을 연상시키는 작품도 감상하고, 수천 개의 바람개비도 구경한다. 아잉 손잡고 놀러 온 가족도 있고, 서로 허리 꼭 감싸고 걷는 연인들도 많다. 코앞이 북한 땅이라는 사실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평온한 풍경.

그 유명한 임진각도 올라본다. 지붕에 마련된 전망대에 서면 경의선 임진강 철교도 보이고, 자유의 다리도 보인다. 1953년 휴전 되면서 약 1만2,000명의 포로가 자유를 찾아 이 다리 건너왔다. 망배단 옆 총탄 투성이가 된 증기 기관차(장단역 기관차․등록문화재 78호)도 구경한다. 이 기관차 있는 곳에서부터 휴전선까지 5.9km, 판문점까지 8.9km, 개성까지 22km다. 서울까지 53km, 이러니 여기선 개성이 더 가깝다. 이곳에서 분단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된다.

서울로 돌아갈 때 들를 곳도 많다. 자유로 타면 헤이리문화마을, 오두산통일전망대, 파주출판단지, 그리고 주말마다 북적대는 아울렛을 다 지난다.

●여행메모

△ 하?일정으로 돌아보려면 동선 잘 짜야 한다. 파주삼릉->용암사(용미리 마애이불입상)->보광사->자운서원(율곡이이유적지)->화석정->반구정(황희선생유적지)->임진각 평화누리. 이 순서가 괜찮다. 파주삼릉관리소(031)941-4208, 용암사(031)942-0265, 보광사(031)948-7700, 율곡이이유적지(031)958-1749, 황희선생유적지(031)954-2170, 임진각 평화누리(031)953-4744

△ 조리읍 뇌조리의 뇌조리 국수집(031-946-2945)은 '갈쌈국수'가 유명하다. 국수 마니아들 즐겨 찾는 곳. 잔치국수나 비빔국수를 양념에 잰 돼지고기와 먹는다. 국수와 돼지고기가 함께 나오는 세트메뉴는 1인분 7,000원, 단품은 잔치국수, 비빔국수 각 4,000원이다.

문산읍 사목리 반구정나루터집(031-952-3472)은 장어구이로 이름 날리는 집이다. 양념구이, 소금구이 각 1인분(250g) 4만5,000원이다. 황희 선생 유적지 옆에 있다.

탄현면의 오두산막국수 통일동산직영점(031-941-5237)은 파주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막국수집으로 입소문 타고 있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 등장하며 더 유명해졌다. 물막국수 보통 6,000원, 비빔막국수 보통 6,500원이다.

파주=글ㆍ사진 김성환기자

한국스포츠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