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시간제… 출퇴근시간 융통성… 인력 여유… 연차 사용 눈치 안봐가정과 일 '두 마리 토끼' 한손에급여 불만 "가족친화형기업 보다 고임금·고강도 직장 찾게돼…경력단절 해결 최저임금 인상부터"
최근 우리 사회에서 경력단절, 일과 가정의 양립 등 여성의 노동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여성의 경제참여율은 지난 10여년 간 50% 내외에서 정체, 남성의 60%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7일 공공기관 운영위원회를 열어 '2014년도 공공기관 인력운영 추진계획'을 확정, 경력단절 여성의 채용을 두 배 이상 늘리기로 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
문제는 정책의 실효성이다. 여성 노동에 대한 근본대책 대신 고용률의 단순확대에 그칠 우려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본지는 '여성이 미래다…경력단절 막아 국가경쟁력 높이자'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한다.
지난 4일 경북 영천시 도남동 자동차부품 생산업체 대하인프라. 작업장에는 30, 40대 여성들이 자동차 기어박스에 들어가는 콘솔을 조립 및 포장하느라 바쁜 손놀림을 이어가고 있었다. 완성된 부품은 일본 닛산자동차의 미국공장으로 전량 수출된다. 이 업체 근로자 47명 중 임신과 출산,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됐다 재취업한 여성은 15명이다. 모두 생산직이지만 잔업이 전혀 없는 주 5일 근무에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근무하는 상용직(정규직)이어서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경력단절여성에겐 비교적 좋은 조건에 속한다. 또 노동강도도 높지 않고, 추위 및 더위와도 무관한 근무환경이어서 경력단절여성이 제2의 경제활동을 시작하기에 별 어려움이 없는 편이다.
여성, 특히 워킹맘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일과 가정생활의 조화를 적극 지원하는 여성친화, 가족친화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여성근로자의 생애주기와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유연근무와 탄력근무제 등을 통해 여성의 경제참여율을 높이고 있다.
대하인프라에서 반년 정도 근무 중인 김월미(37)씨는 초교 5학년, 고교 1학년 자녀 둘을 뒀다. 결혼 후 일을 접었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다시 일을 시작했다. 식품회사에 잠깐 취업했으나 여성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강도, 장시간의 노동으로 몇 달 만에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주위의 소개로 알게된 경북새일지원본부 직업설계사의 주선으로 대하인프라에서 근무하게 된 김씨는 "탄력시간제 근무여서 퇴근시간이 빨라 집안살림에 애로가 없다"며 "일반적으로 경력단절여성의 재취업은 일의 성격도 그렇고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데도 문제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워킹맘들의 눈높이를 맞춘 이 업체의 이직률은 20%도 채 되지 않는다. 대하인프라 관리팀 박동효(46) 차장은 "경력단절여성 등 워킹맘들은 일과 가정을 조화롭게 영위할 수 있는 근로환경이 돼야 경제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며 "이런 면을 감안해 우리 회사에서는 출퇴근시간을 여성들에 맞게 조정하고, 자녀가 아프다거나 하는 비상상황에서 여성들이 눈치보지 않고 연차를 쓰도록 항시 5%의 여유인력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만 해도 각각 돌배기와 유치원생 자녀를 둔 여성근로자 두 명이 자녀문제로 결근했다. 박 차장은 "1990년대 초반까지는 우리집도 맞벌이를 했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아내가 일을 그만두게 됐다"며 "당시는 지금처럼 방과후학교 같은 것도 없었고 여성근로자들이 집안일 때문에 하루 쉬는 것도 눈치 봐야 하던 시대라 경력단절이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여성 및 가족친화기업 여성근로자들도 불만이 없진 않았다. 근무시간에 비례한 빈약한 임금 탓이다. 이 회사의 경우 기본급이 시급으로 책정되고 여기에 210%의 상여금과 각종 수당이 더해지는데, 시급이 최저임금인 시간당 5,210원에 불과하다 보니 한 달 일하고 받는 월급은 상여금 포함 125만원 정도다. 이 곳에서 일하는 최은혜(48)씨는 "결혼 후 일을 접었다 아이들이 중고교 진학할 즈음 일을 다시 갖게 됐는데, 서비스업이나 여타 생산업체는 근무시간이 너무 길어 몸이 힘들고 가정생활도 엉망이었다"며 "이 회사는 근무여건은 좋지만 한 달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이 너무 적어 아쉽다"고 했다.
"170만원 정도는 손에 쥐어야 일 할 맛이 날 것 같다"는 임정숙(51)씨는 "당장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들은 가족친화기업 보다는 오랜 시간 고되게 일해도 돈 많이 주는 직장으로 갈 수 밖에 없다"며 "경력단절여성 문제와 일ㆍ가정양립 지원은 우선적으로 열악한 한국의 최저임금 체계를 끌어올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ㆍ사진 이현주기자 lare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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