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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2월 11일] 사투리를 쓴다는 것, 서울에서

입력
2014.02.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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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인기를 끈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사투리 사용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성공했다. 소위 '표준어'와 서울중심주의의 폭력이 판을 치는 한국에서, 품격 있고 예쁘고 또 낭만적인 드라마의 주인공 모두가 사투리를 쓴다는 것은 결코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이 드라마가 세대를 초월하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하면서 '서울사람'이 되어가는 보편적인 '한국적' 경험을 잘 이야기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드라마가 배경으로 삼은 1990년대 중반에도, 마치 1960~70년대와 같은 '서울 집중'의 상황은 전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사투리는 지방 출신들에게는 서울 진입의 중요한 문화적 '문턱'이었으며 지금도 물론 그렇다. '서울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는지 꿈에서도 짐작하기 어렵지만, '촌사람'들 대부분은 몸에 밴 사투리 때문에, 잠시 또는 오래, 정체성 문제를 고민스레 느끼고, 서울과 지방 사이에 있는 명백하고 실제적인 문화적 '위계'를 알게 된다. 서울말의 세련됨과 '시크함' 앞에 움츠러들지 않는 사투리 사용자란 거의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 정체성의 일부라 믿기 때문에 고향 경상도말의 억양(때론 어휘)을 가급적 지키려 한다. 표준어 담론의 폭력성도 싫어한다. 그러나, 내 주변에는 전혀 시골 출신 표가 안 나게끔 거의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나이가 어릴수록, 여성일수록 또한 학력이 높을수록 그런 가능성이 대체로 높다. 그리고 더 결정적으로는 호남 지역 출신일수록 방언 억양을 잘 숨기는 듯하다. 성조가 남아있는 영남이나 강원 말에 비해 그쪽 말이 음성학적으로 서울말에 더 가깝기 때문이겠지만, 여기에는 '생존'의 필요와 명백한 문화정치학적 이유도 있다. 호남 출신이 차별당했던 매우 객관적인 역사가 있고, 지금도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응답하라 1994'에서는 전남 여수 출신의 '윤진이'라는 여성 인물이 귀여운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과격한 호남 방언을 구사하여 인기를 끌었다. "창자로 젓을 담가불랑께"같은 거친 화법을 사용하며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큰 경상도 남성 '삼천포'의 목을 움켜쥘 때, 많은 이들은 카타르시스마저 느꼈다. 어쩌면 그것은 한국 문화정치에 대한 좋은 전복적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서울에 살면서 호남 방언을 그렇게 표나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서울말과 사투리 사이의 위계, 다른 하나는 사투리와 사투리 사이의 차이와 차별이다.

이런 면에선 나는 경상도 억양에 대해 사실 100%의 자부심은 없다. 내 동향 선배 하나는 대학에 온 후 자기 억양이 전두환ㆍ노태우, 그리고 군부독재의 판ㆍ검사, 국회의원, 장ㆍ차관 들이 쓰는 억양과 비슷하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어렵게 사투리 억양을 고쳤다.

사투리 사용은 정치적인 것과 꽉 연결돼 있다. 물론 그것은 계급과 현실의 경제적 격차 문제와도 여실히 연동된다. 만약 '윤진이'나 '해태'가 가난하고 예쁘지 않은 인물이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소위 '명문대생'이 아니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드라마 덕분에 비단 영호남의 말뿐 아니라, '우리말'이라는 것이 단지 하나가 아니라 얼마나 다채롭고 풍부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됐다. '응답하라 1994'는 드라마 속에선 영호남 화합을 구현했을 뿐 아니라, 이 획일적이고 좁은 서울공화국에서 사투리와 그 사용의 가치를 높여 부분적으로나마 그 위계를 전복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표준어와 사투리, 사투리와 사투리 사이에 실재하는 차이와 차별 전체를 생각하게 하지는 못했다. 함경도나 평안도, 또 연변 지역의 사투리를 쓰는 매력 있고 품위 있는 인물이 드라마나 영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날도 올까? 실제로 일상에서 호남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선입견과 차별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까? 좀 멀었다고 본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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