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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2월 11일] '집으로 가는 길'과 '외교부의 길'

입력
2014.02.1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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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이 설 연휴에 영화를 많이 보는 모양이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또다시 외교부 홈페이지가 시끄럽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보고 흥분한 시민들의 항의 때문이다.

'칸느의 여왕' 전도연씨가 출연한 이 영화는 주인공 장미정씨가 지인에게 속아 마약을 운반하다가 프랑스 공항에서 체포된 뒤 서인도제도 마르티니크섬 감옥에서 고초를 겪다 2년 만에 돌아오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는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이 통역도 지원 않고, 중요한 판결문도 프랑스 법원에 전달하지 않는 등 장씨 사건을 건성으로 처리한 것처럼 묘사했다. 영화 줄거리가 100% 사실이라면 뻔뻔한 외교부 공무원은 물론이고, 프랑스 대사였던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중용한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게 당연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외교부는 부당하게 욕을 먹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케 하는 '변호인'처럼 이 영화도 실화가 바탕이지만 허구가 가미돼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 올린 상업영화다. 관객을 분노하게 만든 주요 묘사 모두 사실이 아니다.

영화에서 무책임했던 영사는 장씨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 본토에서 7,100㎞ 떨어진 마르티니크섬을 세 차례나 찾아갔다. 영치금도 제대로 전달됐고, 책이나 의류 생필품은 물론 개인 돈까지 빌려줬다는 게 외교부 설명이다. 장씨는 '잘 챙겨줘서 고맙다'는 취지의 편지를 해당 영사에게 보내기까지 했다. 석방에 결정적 역할을 한 한국 법원의 판결문을 프랑스 재판부에 제출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도 영사였고, 프랑스 재판부는 판결문을 받고도 7개월 뒤에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기자의 마음 속에서 '외교부가 정말 억울하겠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팩트는 틀리지만 영화 속에 담긴 외교부 이미지가 실제와 그리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 안위가 걸린 중대한 외교ㆍ안보 문제를 다루는 비밀ㆍ보안ㆍ엄숙주의의 전통 탓일까. 지난해 부처 업무평가 1위답지 않게 외교부는 영사 업무를 포함한 일반 국민과의 접점에서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 작지만 상징적 의미가 큰 걸 꼼꼼히 챙기지 못하고, 형식과 절차를 강조하다 보니 민원인 중 상당수가 '무시 당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외교부는 작은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외교부 청사 1층 로비 정면 벽에는 세계 지도 조형물이 걸려 있다. 조형물에는 세계 주요 지역 시각을 알려주는 시계도 설치됐는데, 3개월 넘게 미국과 유럽지역 시간이 실제보다 1시간 빠르게 잘못 맞춰져 있다. 서울이 오전 9시면 미국 워싱턴은 오후 7시인데, 외교부 시계는 8시를 가리킨다. 겨울에는 원래보다 1시간 앞당기는 일광절약시간제(일명 서머타임제)가 종료되는데도, 이를 방치했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의 눈썰미 있는 외교관에게 대한민국 외교부의 첫인상은 '시간 관념 없는' 조직인 셈이다.

영사 관련 민원에 대한 대응도 국민 눈높이와 다르다. 최근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캄보디아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한국인에게만 1달러 통과세를 요구하는 걸 없애 달라는 민원이 부쩍 늘었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으나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국민들도 해외에서 요령과 편법을 일삼는 걸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당 요구에 응하는 한국인도 문제라는 것인데, 캄보디아 직원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20~30분간 지체되는 불편을 겪었다고 호소하는 민원인으로서는 분통 터질 해명이다. 한국인을 봉으로 여기는 관행을 차단해야 할 외교부가 '우리는 할 만큼 했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권위적 모습도 엿보인다. 해외 공관에서 공무원 신분 외교관과 일반 행정직원에 대한 상해보험 보장 수준을 차별한다는 본보 기사(1월6일자ㆍ8면)에 대해 개선안을 내놓기 보다, 지레짐작으로 내용을 유출했다고 단정하고 애꿎은 민간 기업을 닦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엄중한 현실에서 국익을 지키는 게 핵심 임무지만, 외교가 국민 행복을 극대화하는 정부 서비스의 하나가 된지도 이미 오래다. 우리 외교부의 섬세한 변화를 기대한다.

조철환ㆍ정치부 차장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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