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박사학위를 마친 후 미국대학에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환경청의 'STAR'라는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스타과학자를 위한 연구비가 아니라, '결과를 성취하기 위한 과학'이라는 말의 머리글자였다.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 뚜렷한 결과를 내어 놓으라는 관료들의 압박이 반영된 것이었다.
지난 연말연초에 걸쳐 세 가지 흥미로운 뉴스를 접하였다. 첫 번째는 하버드 대학에서 있었던 폭탄설치 위협 사건이다. 학교에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위협메일 때문에 FBI가 출동하고 기말고사를 보던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며칠 후 심리학 전공의 한국계 신입생이 협박 메일을 보낸 혐의로 체포되었다. 두 번째 기사는 한 펀드 매니저의 재판 이야기였다. 이 사람은 불법적인 내부자 거래로 27억 달러의 부당 이익을 취한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 받는 중이었는데 정작 뉴스거리는 그가 15년 전 학생시절에 한 일이었다. 마지막 이야기는 미국 프로 야구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에 관한 것이었다. 로드리게스는 뉴욕 양키스 3루수로 최다홈런과 연봉 기록을 기록한 인기 절정의 메이저리그 선수였다가 불법 약물 복용 혐의로 출장 정지된 상태이다. 그런데 약물 복용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담은 보고서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그의 이야기가 다시 수면위에 떠올랐다.
불법적인 일을 하다가 처벌을 받게 되었다는 점 이외에도 이 세 가지 에피소드의 배경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이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남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들이란 점이다. 어느 분야의 엘리트라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윤리적일 것이란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성적이 좋은 학생, 높은 공직에 있는 관료, 대기업의 임원, 연구와 강의를 잘하는 교수, 모두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엘리트들의 비윤리적인 행동은 보통사람의 것을 뛰어 넘는다. 폭탄 위협 메일을 보낸 학생은 자신의 IP를 숨기려고 두 가지 프로그램까지 사용했고, 펀드 매니저의 경우에는 성적 조작이 들통 난 후에도 가짜 이메일과 유령 컴퓨터 회사 보고서까지 조작하다 결국 학교에서 퇴학당했고 이름까지 개명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로드리게스의 경우 처음 주장과 달리, 사실은 요일별로 또 경기 일정별로 자세한 약물 주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의 불법적인 행동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성공에 대한 주위의 강한 압박이다. 정황을 보면 하버드대 학생은 어려서부터 학업에 대한 주위의 기대가 매우 컸고, 결국은 기말고사를 중단시키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펀드 매니저는 처음에 성적 조작을 한 이유가 좋은 성적을 기대한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실토했다. 로드리게스의 경우 약물 복용을 정기적으로 시작한 시점은 그의 연봉과 인기가 치솟기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
쉴 틈 없이 결과를 독촉하면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비윤리적인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연구실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이라던 어느 한국 과학자의 표현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돈 버는 동물이라 불리는 미국 금융계의 대표 회사들조차 비윤리적인 행위를 줄이고자 제시한 첫 번째 방안이 직원들을 휴일에 쉬도록 하는 것이었다. 또 가족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것, 종교 활동이나 사회봉사에 참여하는 것 등이 오히려 업무 성과를 더 높인다는 연구 결과들 또한 생각해볼 점이다. 내 주위를 보면 '열심히 연구하는 것'과 '실험실에 늦게까지 남아 있는 것'을 혼동하는 과학자들이 많다. 회사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결과만 독촉하고 밑에서는 자리에 앉아 전전긍긍 하고 있는 것, 이것이 비윤리와 비효율의 시작점이다. 휴식과 사람 관계의 회복, 이것이 높은 윤리성과 우수한 결과를 얻는 상책이다. 이는 내 개인적인 경험과도 일치한다. 박사과정 때부터 지금까지의 내 연구 경력을 되돌아보면, 'STAR'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정작 결과물은 제일 초라했었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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