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눈이 하루만 더 오면 지붕이 무너질까 걱정이래요."
9일 강원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지붕 위에 50㎝ 가량 쌓인 눈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듯 위태로운 모습이었고, 주민들은 지붕이 무너질까 노심초사했다. 이 마을은 우리나라에서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지난 6일부터 나흘째 쏟아진 81.5㎝의 '눈 폭탄'은 이 곳 주민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주민들은 트랙터까지 동원해 눈을 치우고 있지만 1m가 넘는 눈이 쏟아져 마을이 3일간 완전히 고립됐던 2011년 2월의 악몽이 되풀이될까 걱정했다. 최대집(53) 대기3리 이장은 "산속에 있는 사찰인 발왕사 인근 5가구 주민들은 6㎞ 가량 떨어진 아랫마을인 배나드리에서 물을 길어다 쓰는데, 폭설이 장기화되면 식수마저 떨어질까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 마을은 7일부터 시내버스 운행이 끊긴데 이어 평창, 정선에서 대관령 아래로 이어지는 국도 35호선 닭목령과 삽당령을 통한 진입도 여의치 않아 '육지 속 섬'이 돼 버렸다.
최 이장은 "밤샘 제설작업으로 가까스로 차량 통행은 가능해졌지만 국도 변에서 마을까지 10㎞ 가량 도로에 쌓인 눈을 뚫고 마을을 드나들다 자칫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커 주민들이 이동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관령 아래 있는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 역시 1m 가까이 쌓인 폭설로 마을 전체가 눈 속에 파묻혔다. 나흘간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쏟아진 눈은 어른 허리 높이까지 쌓였다. 강릉시내에서 마을로 운행하는 외곽 시내버스가 단축 운영돼 200여명 주민들은 사실상 고립된 상태다.
주민들은 최소한의 생필품이라도 공급받기 위해 쌓인 눈 속에 작은 통로인 '토끼 길'을 뚫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위촌리 주민 이석봉(72)씨는 "습기를 잔뜩 머금은 눈이 쌓여 지붕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면서 "눈을 치워도 끝이 없어 이젠 그치기만을 기다릴 뿐"이라고 쓴 웃음을 지었다.
강릉시내도 폭설로 사실상 도시기능이 마비됐다. 시민들이 외출을 하지 않아 아파트 단지 주차장마다 차량들이 눈을 뒤집어쓴 채 빼곡히 들어찼다. 제설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는 주택가 골목엔 밀가루를 쏟아 부은 듯 흰 눈으로 뒤덮여 우편배달 업무가 중단됐다.
강릉시는 지난 6일부터 공무원과 군인 4,000여 명과 유니목 등 200여 대의 제설장비를 동원해 눈 치우기에 나섰지만 장기간 쏟아지는 폭설에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각종 중장비와 제설차량을 투입해 주요 도로와 도심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으나 너무 많은 눈이 내려 치운 눈을 쌓아둘 곳도 없는 상태다.
홍준철(40ㆍ강릉시 홍제동)씨는 "운전석 문이 열리지 않을 정도로 눈이 쌓여 차를 두고 생수와 라면을 사러 나왔다"며 "당장 출퇴근길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강릉 임곡리와 어단리, 학산리 등 일부 산간마을 주민들은 20여 개 노선의 버스운행이 중단되자 귀가를 포기하고 강릉시내 찜질방 등지로 발길을 옮겼다.
기상청은 이 지역의 폭설은 최근 한반도 주변에 유입된 북동풍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현수 기상청 통보관은 "현재 베링 해역에 고기압 덩어리가 형성돼 기압계 흐름이 느려진 탓에 우리나라 북쪽인 시베리아에 고기압이 장기간 머물러 있다"며 "이 영향으로 지속적으로 유입된 차가운 북동풍이 동해상의 습기와 만나면서 눈구름대가 발달해 많은 눈을 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릉=박은성기자 esp7@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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