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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는 정치 참여보다 학문 탐구가 더 바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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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는 정치 참여보다 학문 탐구가 더 바람직"

입력
2014.02.0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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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공부를 현실 정치에 반영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김대중 정부 때 잠시 대통령 정책자문위원장을 했고 지난해 5개월여 동안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을 맡았다. 학자로서 현실 정치에 참여했던 이 경험을 그는 "별로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 시간에 차라리 더 공부를 하는 게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조직한 연속 강연 '문화의 안과 밖' 세 번째 강좌로 8일 서울 안국동 안국빌딩 W스테이지에서 '학문의 중립성과 참여'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최 교수는 정치적ㆍ사회적 영향으로부터 학문의 중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학자, 지식인이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것보다 학문적 탐구에 전념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현실 정치에 잠시 개입했던 자신의 이력에 비추어 다분히 자기비판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발언은, 그러나 지식인의 사회 참여는 현실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한 게 아니라 학문에 전념하면서도 공익에 이바지할 수 있음을 환기하려 함이지, 현실에 무관심하라는 주문이 아님을 그는 강연 내내 강조했다.

그는 학자와 지식인의 현실 정치 참여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치적 지적 풍토에서 지닌 한계를 지적하면서,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무겁게 여기며 학자의 책임윤리로서 소명의식을 잊지 말 것을 역설했다. 이데올로기적 양극화, 정책 결정 과정의 폐쇄성 등 우리 사회의 특성으로 인해 학자의 현실 참여는 진영 논리의 강화 또는 이미 결정된 정책의 정당화 등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 정당정치, 사회운동이나 공론장 등 학자가 참여할 수 있는 정치 영역의 공통된 문제로 이를 지적했다.

최 교수는 강연 말미에서 한국 사회에서 소명의식을 갖는 학자, 지식인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경험적 사실 추구에 기초해 진실을 탐구하고 추구하는 열정, 도덕과 닿아 있는 비판적 이성, 실천적 지혜 혹은 절제의 지혜다. 이러한 덕목들을 합쳐서 최 교수가 그려낸 이상적인 학자, 지식인은 참여적 관찰자이면서 심판관이다. "현실의 정치적 사회경제적 조건에 무관심하거나 무조건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그에 깊이 관여하고 개입"하되 "특정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열광하지 않고 이성을 통해 그것들과 적절한 긴장 내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판관의 역할을 그는 운동경기의 레퍼리에 비유했다. 예컨대 축구 경기에서 레퍼리는 선수들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하지만 어느 한 팀을 위해 공을 차는 선수는 아니다.

학자는 현실에 참여하는 것보다 학문에 매진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비칠 만하지만 학문하는 자세 혹은 학자의 책임윤리를 더 무겁고 엄격하게 강조한 것임을 이날 수강생 중 한 명이 강연 후 토론에서 지적했다. 이 수강생은 이를 "각성된 비참여"라고 요약했다.

연속 강좌 '문화의 안과 밖' 은 18일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의 강연으로 시작했다. 공적 영역의 위기, 문화예술과 현실, 시대와 새로운 과학, 역사와 전통 등 8개의 큰 주제 아래 각각 6, 7개씩 모두 50회 강연이 내년 1월 10일까지 이어진다. 국내 대표적 지성들의 학문적 성찰을 대중과 공유하는 자리로 50여 명의 학자들이 강연과 토론에 참여한다. 이 프로그램은 네이버 캐스트 '열린연단'(openlectures.naver.com)에서 볼 수 있다. 강연과 토론, 문답으로 진행되는 현장을 중계해 전달하는 서비스가 웹과 모바일로 7일 시작됐다. 수강 신청도 여기서 할 수 있다.

오미환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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