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은 천 마디 말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말로 아무리 잘 설명해도 사진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만 못하다는 의미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말과 글만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적 사실이나 연구 결과를 전달하기 위해 기꺼이 예술적 기지를 발휘하는 과학자가 늘고 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와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국제 과학공학 시각화 대회(ISEVC)'를 통해 과학자들의 '작품'을 11년째 발굴해오고 있다. 지난해엔 12개국에서 227개 작품이 출품됐고 이 중 18개 작품이 수상작으로 7일(현지시간) 발표됐다. 사이언스는 "시각 효과의 우수성과 창의성뿐 아니라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대중에게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를 기준으로 심사했다"고 밝혔다.
● 가장 화려한 소용돌이(원제: 보이지 않는 산호의 흐름)
소용돌이를 만들며 늘어진 모양이 마치 카메라 노출을 길게 설정해 찍은 불빛 같다. 놀랍게도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수준으로 들여다 본 산호다. 아래 양쪽 붉은 덩어리들은 산호 몸체의 일부. 실제로는 서로 3㎜ 떨어져 있다. 소용돌이 모양은 산호 표면 미세한 털(섬모)들의 움직임을 특수 영상기법으로 따라잡으면서 색깔을 입힌 것이다. 산호는 섬모를 움직여 노폐물을 내보내고 물 속 영양분을 끌어당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출품.
● 반짝반짝 작은 별(원제: 말발돌이의 별 같은 솜털)
빛나는 별이 물 위에 비친 모습 같다. 별 모양의 실제 지름은 약 4분의 1㎜. 말발돌이라는 식물의 잎을 덮고 있는 미세한 털의 끝이 이렇게 생겼다. 편광광학현미경으로 찍으면서 빛을 걸러내 배경이 파랗게 되도록 조절했다. 별 모양 털의 밀도와 크기 등을 분석하면 말발돌이에 속하는 20가지 이상의 종을 구별할 수 있다. 영국 현미경 전문가 출품.
● 우주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미생물(원제: 스스로 조립된 마이크로 고분자)
기이하게 빛나는 외계 미생물? 대홍수 직후의 미국 맨해튼? 실은 병 진단용 미세 칩을 만들 때 쓰는 약 2㎜ 길이의 고분자 물질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것이다. 온도와 습도를 적절히 변화시키면 스스로 이처럼 복잡하고 독특한 구조로 변신한다. 이런 특성 덕분에 미세한 칩 안에서 더 미세한 세포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 출품.
● 보이지 않는 습격(원제: 코로나물질 방출과 해양/바람 순환)
멕시코만류를 따라 광대한 고리와 나선 모양 패턴이 선명하다. 태양에서 지구로 돌진해 들어온 수많은 입자들이 만드는 바람이다. 실제 위성 데이터와 6가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포착했다. 이 같은 태양 입자의 영향으로 지구에는 필요한 양보다 약 100배 많은 열에너지가 전달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우주항공센터 출품.
● 신 스타워스?(원제: 소화관 점막의 면역학)
공상과학 영화의 우주전쟁 장면일까. 실은 인체에서 가장 많은 면역세포가 모여 있는 장 속 단면을 표현한 그래픽이다. 아래쪽 구 모양들이 면역세포로, 일부는 메신저 분자(흰 점)들로부터 정보를 전달받고 있다. 가운데 띠처럼 일렬로 늘어선 부분은 세포막이다. 면역세포가 제 역할을 못하면 염증성 장질환 같은 병이 생긴다. 미국 아키테크스튜디오 출품.
● 용수철 달린 장난감(원제: 구형 핵산)
손에서 놓으면 통통 튀어 오를 것 같은 공처럼 생긴 이 녀석은 미국의 한 나노 과학자가 개발한 유전자 치료용 물질이다. 치료에 필요한 유전자(RNA)를 겉에 달라붙게 한 다음 세포막의 지질층을 비집고 들어간다. 이렇게 세포 안으로 전달된 RNA는 세포 밖 효소의 공격을 피하면서 안전하게 치료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출품.
● 해질 무렵 자작나무 숲(원제: 금속 파스텔 톤의 피질)
어스름한 저녁 파스텔 톤으로 빛나는 숲 속을 바라보는 듯하다. 이 '숲'은 대뇌 가장 겉 부분인 피질에 있다. 나무처럼 보이는 구조물이 신경세포다. 가지와 뿌리는 신경세포에서 뻗어 나와 신호를 주고받는 돌기들이다. 대뇌 피질을 얇게 잘라 신경세포의 섬세한 구조만 골라낸 다음 색소를 입혀 현미경으로 찍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ㆍ존스홉킨스대 출품.
● 위대한 손?(원제: 세균이 제어하는 사람의 손)
실제 손을 본뜬 1.5m 높이의 조각상. 자세히 들여다 보면 초록색과 붉은색 점들로 뒤덮여 있다. 이 손의 주인인 미국의 한 전자현미경 전문가가 정원의 흙 속에 넣었다 뺀 손을 특수 염색해 세균 분포를 그린 그림을 조각상에 덮어 씌운 것이다. 초록색은 치료제가 잘 듣지 않는 세균이고 붉은색은 잘 듣는 세균이다. 인간과 세균의 대결에서 여전히 세균이 우세함을 표현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출품.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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