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의 간판 이승훈(26ㆍ대한항공)이 고개를 숙였다. 밴쿠버 대회 때 은메달을 목에 건 남자 5,000m에서 10위권 내에도 들지 못했다. 크게 두 가지가 아쉬웠다. 초반 레이스, 빙질 파악이다.
이승훈은 8일(한국시간) 밤 러시아 소치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서 6분25초61이라는 기대 이하의 기록으로 12위에 머물렀다. 스벤 크라머(6분10초76), 얀 블로크후이센(6분15초71), 요리트 베르그스마(6분16초66) 등 네덜란드 선수들이 금ㆍ은ㆍ동메달을 싹쓸이했다. 이승훈은 마지막 조인 13조에서 레이스를 펼쳤지만 자신의 최고 기록(6분07초04), 밴쿠버 때 기록(6분16초95)에도 못 미쳤다.
초반 4바퀴 때 일찌감치 승부가 결정났다. 이승훈은 10조의 크라머, 11조의 베르그스마, 12조의 블로크후이센 등 라이벌들의 레이스를 모두 지켜본 뒤 출발대에 섰다. 6분16초 안으로 결승선을 통과한다면 최소 동메달을 확보한 채 은메달까지 노려볼 수 있었다.
이승훈은 그러나 초반 레이스에서 좀처럼 시간을 단축하지 못했다. 200m를 19초19에 통과한 뒤 29초66(200m~600m), 30초02(600m~1,000m), 29초71(1,000m~1,400m), 30초02(1,400m~1,800m)의 랩타임(트랙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린 시간)을 연달아 기록했다. 특히 두 차례나 30초대 랩타임을 찍으면서 28초대 후반, 최소한 29초대 초반의 랩타임을 유지한 네덜란드 선수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1,800m까지 2분18초60이 걸렸다. 라이벌들과는 3초 이상의 간격이 벌어졌다. 결국 3,000m부터 급격히 체력이 떨어진 이승훈은 줄곧 30초대 랩타임을 기록하면서 10위권 밖으로 쳐졌다. 마지막 3바퀴 랩타임은 31초49, 31초73, 32초63이었다. 김관규 대한빙상경기연맹 전무이사는 “초반에 속도를 끌어올려야 했는데 이뤄지지 않았다. 자신의 장기인 후반 스퍼트도 전혀 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빙질 파악도 아쉬웠다. 소치의 아들레르 아레나는 빙질이 무르고 해발 고도도 4m밖에 되지 않아 좋은 기록을 내기 힘들다. 4년 전 밴쿠버 대회가 열린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과 마찬가지로 ‘슬로우벌’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승훈은 이미 지난해 이 곳에서 한 차례 호된 경험을 했다. 3월 열린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5,000m에서 6분26초78의 기록으로 8위에 그쳤다. 그런데 1년 전 기록과 이날 기록은 큰 차이가 없었다. 1초 정도 빨라졌을 뿐이다. 당시 우승자인 크라머는 6분14초41였던 기록을 6분10초76까지 줄였다. 같은 조건이었지만, 이승훈은 여전히 빙질 적응에 애를 먹은 채 기대했던 만큼 기록 단축을 하지 못했다.
이승훈은 “이번 시즌에 좋아진 부분이 많고 기록이 좋았는데 결국엔 올림픽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현지 적응을 잘 못한 것 같다”며 “너무 많이 긴장했고 출발할 때부터 여유가 없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도 남은 경기에서는 꼭 메달을 따겠다”고 말했다. 함태수기자
한국스포츠 함태수기자 hts7@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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