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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환상을 보듯… 신비롭게… 미국의 미래 다룬 SF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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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환상을 보듯… 신비롭게… 미국의 미래 다룬 SF소설

입력
2014.02.07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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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작가 이창래의 새 소설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워싱턴 인근 공공도서관에 가서 대출을 신청했다. 도서관 직원 왈 "당신이 여든 두 번째 예약자"란다. 이창래의 새 소설 (On Such a Full Sea)는 지난 달 중순 워싱턴포스트 서평란에 소개됐다. 이런 신문 기사의 영향으로 소설이 도서관에 도착하기 전에 대출 신청이 쇄도한 것이다.

이창래는 1995년 첫 소설 (Native Speaker) 이후 내놓는 작품마다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신작도 마찬가지다. 워싱턴포스트뿐 아니라 뉴욕타임스까지 이례적으로 두 차례나 그의 소설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새 책을 내놓은 뒤 그는 미국 주요 도시를 돌며 독자와 만나고 있다. 그의 소설이, 아니 이창래라는 작가가 미국 문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인지 짐작하게 한다.

이번 작품은 미국의 미래를 다룬 공상과학(SF) 소설이다. 지금까지 나온 미래 소설의 계보를 따지자면 조지 오웰의 , 올더스 헉슬리의 에 이어지는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소설은 중국에서 미국 메릴랜드주의 항구도시 볼티모어로 옮겨온 16세 처녀 팬(Fan)이 갑자기 원인 모를 이유로 사라진 같은 동네 남자친구 레그(Reg)를 찾아가며 겪는 우여곡절의 경험을 담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헤쳐나가는 그의 삶을 떠나온 동네 사람들이 화자가 되어 풀어간다. 새장 같이 격리된, 그러나 안정된 마을을 떠나는 고통을 동정하고 그의 모험과 방랑을 격려하는 이야기는 바로 미국의 미래 예측이라고 할 수 있다. 이창래의 이번 작품에 유난히 미국이 뜨겁게 반응하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사람들에게 오늘을 진단하고 미래 예측을 시도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창래가 작품의 출발로 삼은 것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들의 계층 격차가 커지는 오늘의 미국이다. 거기서 출발해 작가는 세 가지 미국 사회의 유형을 그려 나간다.이른바 엘리트 사회와 그 사회의 먹거리, 그리고 먹거리를 공급하는 농장과 생활을 영위하는 집단촌, 무정부적이고 법과 질서가 깨져 폭력이 난무하는 열려있는 도시들(Open Counties)이다.

팬은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사라진 남자친구를 찾기 위해 떠나지만 소설에서는 그것만이 유일한 목적은 아닌 것 같다. 이 소설은 환상을 보듯, 신비롭게 전개되며 아울러 동화적인 분위기도 가지고 있다. 소설에서는 암 대신 'C-병(C-illness)'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팬의 남자친구가 암에 걸리지 않는 유전자를 갖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추측한다. 'C-병'은 오늘날 미국의 유전자 변형, 기후 변화, 환경 생태계 파괴, 인간관계의 변동, 새로운 기술 등을 펼쳐내는 암호 코드 같은 것이다.

팬이 살던 마을을 나와 부딪치는 세상에는 엘리트 사회에서 성장하고 교육 받은 수의사 퀴그(Quig)와 그의 가족, 이웃들이 있다. 애완동물이 사라지면서 수의사는 비즈니스맨으로 변하고 그 수의사와 가족, 주변 사람들이 등장해 유전자 변형과 암 등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팬은 거기서 광신도들이 모여 사는 시골 집단촌으로, 그 다음 집단 살상의 사육제 같은 의식을 치르는 가족을 만난다. 그런 뒤 리오와 캐시가 사는 엘리트 가정에 들어간다. 불길하고 사악한 늙은 그 부자 집에 갇혀 그는 애완동물처럼 사육되기도 하면서 반복해 감금과 자유를 경험한다. 결국 그는 엘리트 사회의 젊은 의사 도움으로 구출돼 그 의사의 아파트에 피난처를 얻는다. 의사는 "아무도 당신을 억류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 소설은 분명 가상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지만 그것을 현실로 여기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팬의 모험은 세 가지 다른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보여준다. 그 사회들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으며 결국 함께 무너지는 성질의 것들이다.

이 작품이 SF라고 대중소설 같이 여겨서는 곤란하다. 소설에는 의학적 지식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경제, 사회, 심리에 대한 깊고 넓은 작가의 해설이 흥미를 돋운다. 철학적이면서 우화적인 이야기들이 352쪽의 소설 전편에 작은 글씨체로 새겨져 있다. 그의 문장은 대체로 사회과학 책을 연상케 하는 것이지만 때때로 서정적이고, 은유적이며, 상징으로 넘친다. 소설의 제목도 셰익스피어의 에서 따온 것이다. 썰물이 들어왔을 때 밀물이 들어올 때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는 미국 사회를 향한 경고로 들을 만하다.

이창래가 지금까지 내놓은 소설은 한결같이 어두운 사회가 배경이었다. (A Gesture Life)에서는 태평양 전쟁에 참가한 일본 윤군 중위 하라가 위안부로 동원된 한국 여자를 강간하고 죽인다. (The Surrendered)에는 한국전쟁의 폭력과 극단적인 인간의 조건이나 상황이 전개된다. 거기엔 전쟁의 참화 속에 세운 작은 교회가 평화의 희망봉으로 떠 오른다. 2010년에 나온 는 이듬해 슛?내?후보작에 올랐지만 아깝게 상을 놓쳤다. 그보다 앞서 나온 (Aloft)은 미국 상류사회의 돈, 명예, 물질주의, 특권 같은 것들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묻는다. 무의미함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한 권태 같은 요소들 때문에 이 소설은 존 업다이크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이번 작품은 그의 이런 이전 작품들의 요소를 다 간직한 작품으로 읽힌다.

가 나왔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소설의 주인공은 뉴욕의 재미동포(한인)다. 하지만 그 소설은 한인사회를 다룬 것이 아니라 스파이 이야기를 담은 스릴러였다. 한국계 이민자들의 아픔, 고통, 승리, 웃음을 기대했던 한국인 독자들이 당황한 데도 이유가 없지 않다. 나도 다른 한인들도 중국계 미국 작가 에이미 탄의 (Joy Luck Club) 같은 작품을 은근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도 이후에도 이창래는 이런 한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이창래가 미국에서 높이 평가 받는 것은 그가 이민 작가들의 일반적인 작품 경향과 동떨어져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의 작가들은 이창래가 왜 미국이나 서구의 문단에서 주목 받고 있는지 곰곰이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 속에서 어쩌면 한국 문학이 세계로 뻗어가는 지름길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최연홍 시인ㆍ미국 워싱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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