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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2월 8일] 무죄추정의 원칙

입력
2014.02.0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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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유명한 법언(法諺)이 있다. 형사법의 대원칙, 즉 우리 헌법 27조 4항이 '형사 피고자는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고 규정한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성문법의 연원은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프랑스 인권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 법률지식의 유무와 무관하게,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적 상식만으로 능히 그 취지를 헤아릴 만하다.

■ 형사소송에서 검찰이 피고의 범죄 사실에 대해 명백히 입증할 책임을 지는 것도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이다. 검찰의 입증 책임은 공소사실에 대해 재판부가 '합리적 의심'을 다 풀고 '법적 확신'에 이를 수준이어야 한다. 따라서 검찰의 입증이 범죄 사실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하는 정도라면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게 마련이다. 법원의 무죄 판결이 '죄가 없다'는 적극적 판단이라기보다 죄가 있을 수도 있지만 검찰이 입증에 실패했다는 뜻에 가까운 이유다.

■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공직선거법 등 위반 혐의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판결을 둘러싼 보수ㆍ진보 언론의 엇갈린 평가는 이를 외면했다. 1심 판결에 대한 이례적 관심은 사건의 사회적 의미와 국민적 궁금증만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다만 아직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은 단계의 반응 치고는 너무 섣부르다. 한쪽은 진실과 정의를 외면했느니 면죄부를 줬느니 하고 떠들고, 다른 쪽은 무죄가 확정되기라도 한 듯 논란 자체의 과도함을 비난했다.

■ 각각의 독자층이 가진 정치적 편향을 고려해 처음부터 유ㆍ무죄 어느 한쪽의 판결을 희구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보도 태도다. 언론계의 큰 어른이던 박권상 전 KBS 사장은 언론인의 으뜸 사명으로 '진실 규명'을 꼽았다. 고인이 강조한 진실은 토석 더미에서 금강석을 발견하듯 찾아내는 것이지, 준비해 둔 틀에 적당한 재료를 채워 아무 때나 찍어내는 벽돌이 아니다. 나중에 확정판결을 가지고 얼마나 국민을 편갈라 싸우게 만들지 벌써 걱정스럽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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