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창래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 (리버헤드북스 발행)가 출간되자 영미 언론들은 앞다퉈 서평기사를 쏟아냈다. 뉴요커,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로스앤젤레스타임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등 유력 매체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세계 출판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뉴욕타임스(NYT)는 두 번의 서평과 작가 인터뷰를 게재, 이창래의 문학적 위상을 실감하게 했다.
이번 작품이 작가의 과감한 문학적 실험의 결과물이라는 점은 모든 서평이 동의하는 바다. 퓰리처상 수상 평론가인 미치코 가쿠타니는 NYT에 쓴 서평에서 "이창래가 (1999) (2004) (2010) 등 전작에서 뽐냈던, 등장인물의 내밀한 삶을 세밀하고 공감 가도록 묘사하는 능력을 감추고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주인공 팬을 창조했다"고 평했다. 코맥 매카시, 마거릿 애트우드, 콜슨 화이트헤드 등 동시대 영미문학 대가들의 디스토피아 소설과 비견되는 작품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이창래 역시 NYT 인터뷰에서 포스트모던 문학의 기수로 꼽히는 미국 소설가 돈 드릴로를 거명하며 "나는 (문학적 시도에 있어) 용감한 작가를 존경한다"며 신작의 지향점을 알렸다.
NYT가 열흘 간격으로 찬사와 비판의 서평을 연달아 게재했듯이 이창래 신작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소설가 앤드류 숀 그리어는 NYT 기고에서 "이창래 신작의 파급력은 (SF작가인) 필립 K 딕보다 (사회파 작가인) 필립 로스에 가까운 것"이라며 "미래소설 장르의 장치를 일부 동원했지만 주인공 팬의 행로는 결국 인간 조건에 대한 끝없는 탐험"이라고 호평했다. "뛰어난 디스토피아 소설은 배경이나 이미지가 특이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처한 조건과 인간 행동의 가능성을 드러냈기 때문에 평가받는 것"이라고 NYT에 말한 이창래의 창작 의도가 성공했음을 인증한 셈이다. 뉴요커는 이창래가 주인공 팬의 모험담을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1인칭이나 전지적 시점 대신 팬의 이웃이던 불특정 다수를 지칭하는 '우리'를 화자로 세운 점, 장르적 관습을 좇아 주인공을 영웅시하지 않고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물로 그린 점이 작가의 주제의식과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가쿠타니는 신작이 올더스 헉슬리의 고전 과 베스트셀러 SF 을 어설프게 섞은 작품이라며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로 미국 이민자 사회에 머물던 작품의 지평을 넓혔던 작가가 다시금 새 진로를 모색했지만 날림으로 지은 동화가 돼버렸다"고 혹평했다. 이코노미스트 또한 "속도감 없는 모험소설이자 전율 없는 공포소설"이라며 "진부하다"고 비판했다. 이창래가 장르소설 요소를 도구 삼아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예의 진지한 주제의식을 확장했다고 보는 쪽은 호평을, 장르소설의 외양만 빌려왔을 뿐 장르 특유의 강한 흡인력을 기술적으로 살리지 못했다고 보는 쪽은 혹평을 내린 셈이다.
극명하게 나뉘는 호오는 이창래 문학에 거는 높은 기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세 살 때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영어 한마디 못했던, 성장기에 아버지 서가에 꽂힌 지그문트 프로이트 전집을 읽으며 인간 탐구에 매력을 느꼈던, 명문 예일대 졸업 후 월가에서 증권애널리스트로 일하다가 작가로 전업한 그는 1995년 데뷔작 를 시작으로 4, 5년마다 역작을 내놓으며 영미문학권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