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악행 왜곡하는 일본, 풍운아 료마는 달랐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악행 왜곡하는 일본, 풍운아 료마는 달랐다

입력
2014.02.07 11:05
0 0

日 메이지 유신 이끌었지만 새 체제 못 보고 암살당해정부의 기틀 세우는 과정서 대화와 타협 통한평화적 사고·행동 보여줘日 위기 겪을 때마다 국론통합의 아이콘으로 등장

1865년 6월 29일 일본 시코쿠 남단 도사번(土佐藩) 출신의 하급 사무라이 사카모토 료마(板本龍馬ㆍ1835~1867)는 친구 나카오카 신타로(中岡愼太郞ㆍ1838~1867)와 함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에게 조슈번(長州藩)이 군함과 무기를 구입하는데 사쓰마번(薩麻藩)이 명의를 빌려줄 것을 요청했다. 사이고의 승낙을 받은 료마는 나가사키의 가메야샤추(료마가 세운 무역ㆍ해운회사)에 구매 주선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그 해 8월 중순 조슈번의 이토 슈운스케(伊藤春輔ㆍ이토 히로부미의 메이지 유신 이전 이름)가 영국 상인으로부터 총기 7,300정을 사들였다. 그리고 다섯 달이 지난 1866년 1월 21일 사이고와, 조슈번의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가 료마의 주선으로 교토에서 회담한 끝에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동맹, 이른바 삿초(薩長)동맹을 성사시켰다.

료마는 그 해 메이지 신 정부 강령의 모태가 되는 선중팔책(船中八策)을 제시했다. 정권을 왕에게 돌려주고, 양원제를 설치하며, 외국과 교류하고, 해군을 확장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를 바탕으로 대정봉환(大政奉還) 즉 도쿠가와 막부가 일왕에게 정권을 반환하는 구상을 내놓았다. 조슈번과 사쓰마번이 막부를 토벌하자는 토막(討幕)을 내세우자 일왕은 1868년 1월 왕정 복구를 공식 선포했다. 260여 년간 지속된 에도 막부 체제가 붕괴하고 새 일본이 탄생했다. 하지만 료마는 이를 보지 못하고 1867년 12월 교토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아 친구 나카오카 신타로와 함께 암살됐다. 서른두 살 때였다. '메이지 유신을 이끈 풍운아' 료마는 이렇게 일본인의 신(神)이 됐다.

1960년 영어로 출간된 이 책은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인 사학자 마리우스 잰슨이 료마와 그의 친구이자 메이지 유신의 중요 조력자인 나카오카 신타로 등 유신 주역들의 사상을 살피면서 메이지 유신의 역사를 풀어낸 저작이다. 메이지 유신의 전개 과정에 초점을 맞춘 책으로, 당시 서구 학계가 메이지 유신이 가져온 변화에 매달린 것과는 딴판이었다. 저자는 에도 막부의 말기적 상황, 서구 열강의 개항 요구, 권력 다툼과 계급 갈등, 정치ㆍ사회 개혁 등 유신 전후 시대 상황을 보여주면서 메이지 유신의 발생 과정과 결과를 폭넓게 풀어 나간다. 출간 당시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그 격동의 시기와 관련한 방대한 자료 수집과 상세한 서술로 서구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지금껏 일본 근현대사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일본의 인기 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소설 의 결정적 모티브가 됐다.

저자는 이 '낭만적이지 않은 료마'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는 반대로 일본 작가와 극작가들이 낭만적 시각에서 료마의 행적을 호도했다는 비판이 된다.

1990년대 후반 일본 규슈 여행을 하면서 메이지 유신에 관심을 가져 번역을 하게 됐다는 역자 손일 부산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료마는 메이지 유신의 성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공부, 그리고 성찰을 거친 끝에 스스로의 길을 개척했다"고 평가한다. 료마가 선중팔책을 작성해 대정봉환 건의서의 기틀을 잡은 것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의 모범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료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가장 존경한다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후쿠자와 유키지(福澤諭吉), 사이고 다카모리 등 이른바 정한론자(征韓論者)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그래서 료마는 일본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국론일치의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봉건체제의 계급의식과 신분의 벽을 깬 그의 극적인 인생은 소설과 드라마에서도 자주 다뤄졌다. 시바의 와 2010년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NHK 대하드라마 '료마전'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이 민주주의, 번영, 국제주의 등을 국가정신으로 삼기로 합의했지만 이면에 심각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고 갈파한다. 일본 근대화를 달성하게 한 료마 같은 유신 지도자들의 목표가 100년 전에는 천황주의를 통해 이뤄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을 버려야 달성할 수 있다고 저자는 믿고 있다. 아베 총리 등 일본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침략과 팽창의 역사를 왜곡하는 지금, 이 책은 현대 일본의 형성 배경을 살필 수 있는 좋은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