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브루나이회원국 간 관세 90% 철폐 골자로 소규모 TPSEP 구축이 첫걸음美 참여 이후 '메가 FTA' 확대12개국 세계 최대 경제블록으로한국 큰 관심 안보이다 일본 참여로 입장 급선회미국 내 자유뮤역 회의론 대두패스트트랙 법안 통과 불투명한국 창립 멤버 될지도 미지수
2002년 10월 멕시코에서 열린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싱가포르와 뉴질랜드, 칠레 등 3개국 정상은 자유무역지대 창설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2005년 6월엔 브루나이도 합류했다. 이들 4개 국은 2006년 1월까지 회원국 간 관세의 90%를 철폐하고, 2015년까지 모든 무역장벽 철폐를 목표로 환태평양전략적경제동반자협력체제(TPSEPㆍ Trna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를 구축했다.
그런데 2008년 2월, 미국이 참여의사를 밝히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그냥 흔한, 소규모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었던 TPSEP는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인 미국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메가FTA’로 급부상했다. 명칭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ㆍTrans-Pacific Partnership)으로 바뀌었다.
미국이 자그마한 경제 블록에 발을 담그려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중국 견제’였다. TPP의 판을 키워, 부상하는 중국에 맞설 미국 중심의 거대 경제동맹체를 구축하려 했던 것이다. 2년 뒤 미국과 함께 베트남, 페루, 호주, 말레이시아 등 5개국이 TPP에 공식 참가했고, 2011년 멕시코와 캐나다도 뒤를 이었다. 지난해 3월엔 일본까지 가세했다.
12개 참가국들의 국내 총생산(GDP) 합계는 무려 26조 6,000억 달러. 무역규모는 10조 2,000억달러에 이른다. 협상이 타결돼 공식 출범하면 유럽연합(EU)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 경제블록이 된다. 그만큼 현재 TPP는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통상 이슈로 꼽히고 있다.
한국도 지난해 11월 말 TPP 협상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다. TPP 참여 절차는 ‘관심표명→기존 참가국과 예비양자협의→공식 참가선언→기촌 참가국의 승인→공식협상참여’의 순이다. 나중에 불참할 수도 있긴 하지만, 관심 표명은 사실상 TPP에 들어가겠다는 의사를 내보인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한국정부는 현재 TPP 참여를 위해 속도를 바짝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3개 국과, 지난달엔 미국 멕시코 칠레 페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6개 국과 예비양자협의를 진행했다. 이달 중에도 캐나다(7일), 호주(11일), 브루나이(13일), 뉴질랜드(14일)와의 예비양자협의가 예정돼 있으며, 일본 베트남과는 이달 말 또는 다음달 초 논의하는 쪽으로 일정을 조율 중이다.
사실 한국은 작년 초만 해도 TPP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미 미국을 비롯, TPP협상 참여국들 중 7개국과 FTA를 맺은 만큼 급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양자간 FTA협상을 진행중인 중국도 의식해야 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내에선 “참여선언을 빨리 하는 게 결코 우리한테 이로울 게 없다”는 의견이 팽배했다.
그런데 갑자기 태도가 바뀐 것은 일본의 참여 때문이다. 정부 안팎에선 “이대로가면 우리나라만 소외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다급해진 정부는 국내 의견수렴절차도 사실상 생략한 채 참여의사를 밝힌 것이다.
TPP협상의 구체적 내용은 비밀주의 원칙으로 인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은 ▦환경보호를 법적으로 강제하거나 환경을 오염시킨 기업을 처벌하는 조항 부재(환경챕터) ▦개별국가가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대기업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법률을 개정하고, 저작권자의 고소 없이도 검찰이 기소하도록 강제(지적재산권챕터)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적용에서 호주정부 제외(투자챕터) 등이 전부다.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은 “예비양자협의를 통해 한ㆍ중 FTA 협상이 상당히 진척돼 있는 걸 다른 국가들이 부러워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한국의 유리한 어드밴티지를 최대한 이용하는 린치팩(핵심축) 전략으로 협상을 이끌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의 뒤늦은 참여선언을 썩 달갑게 보지 않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TPP 가입을 받아주되, 한미 FTA에도 불구하고 줄어들지 않는 무역역조를 해소하기 위해 통상압력을 더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현재로선 TPP가 언제 타결될지 예측불허다. 애초 지난해 말이 목표였지만 올해 상반기 중으로 미뤄진 가운데, 이번에는 미국 의회의 반발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의회가 행정부에 통상협상 권한을 넘기는 무역우선순위법(TPA), 이른바 ‘패스트트랙’ 법안이 통과돼야 하는데 미국 내 자유무역 회의론이 고개를 들면서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미국 의회가 나중에 협상내용을 바꿔버릴 가능성이 있으면 상대국들의 신뢰를 얻기 힘들기 때문에 TPA 통과는 조기타결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내 정치상황,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4월 아시아 순방 등이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며 “TPP협상 타결이 훨씬 뒤로 미뤄질 가능성도 있는 만큼, 오히려 외부에 우군을 확보하는 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협상 막바지에 홀로 참여하기보단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나아가 중국 등 TPP에 관심 있는 국가들을 끌어들여 조직력을 갖춘 뒤 한꺼번에 들어가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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