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외딴섬에 무슨 일… 탈출할 수 없었던 '염전노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외딴섬에 무슨 일… 탈출할 수 없었던 '염전노예'

입력
2014.02.06 12:15
0 0

"아들아, 아들아…." 지난달 24일 서울 구로경찰서 실종수사팀 사무실에서 14년만에 아들 김모(40)씨를 본 배모(66ㆍ여)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2000년 6월 불어나는 카드 빚을 연로한 부모에게 지울 수 없다며 집을 나간 아들은 몰라보게 수척한 모습으로 어머니 앞에 섰다. 배씨는 경찰에게 "내가 죽기 전에 아들을 찾아줘 고맙다"고 눈물을 보였고, 아들 김씨도 "구출해줘 감사하다"며 연신 머리를 숙였다.

김씨는 시각장애 5급으로 앞을 잘 못 보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10년 넘게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그러다 2012년 7월 4일 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무료급식소에서 만난 이모(63)씨가 "직업소개소 직원인데, 광주에 가면 일자리도 주고 숙식도 제공하겠다"며 접근했다. 김씨는 사람 좋아 보이는 이씨의 말만 믿고 영등포역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탔다. 그러나 다음날 열차가 김씨를 내려놓은 곳은 광주가 아닌 목포였다. 김씨는 다시 2시간 배를 타고 전남 신안군의 한 섬에 있는 염전에 도착했다. 왜 광주에 가지 않고 여기로 왔는지 미심쩍었지만 그래도 일자리를 얻게 돼 흡족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 어머니에게 돌아가겠다던 김씨의 꿈은 한 달도 되지 않아 산산조각 났다. 김씨는 염전 주인 홍모(48)씨의 감시 아래 염전 옆 자재창고에서 잠을 자는 서너 시간을 제외하곤 새벽 3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일만 했다. 월급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김씨가 잠시 쉬기라도 하면 주인 홍씨는 각목 쇠파이프 등으로 마구 때렸다. 그제야 김씨는 일자리를 소개한 이씨가 무허가 직업소개업자였다는 것과 자신이 단돈 100만원에 팔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08년 11월 무허가 직업소개업자 고모(70)씨가 염전에 30만원을 받고 팔아 넘긴 지적장애인 채모(48)씨도 같은 신세였다.

김씨의 1년 6개월, 채씨의 5년 2개월 '염전 노예' 생활은 지난달 13일 김씨가 감시를 피해 부친 편지 한 통 덕분에 끝이 났다. 김씨와 채씨가 함께 시도한 세 차례의 섬 탈출작전이 번번이 발각된 후 죽기살기로 붙잡은 마지막 기회였다. 주인 홍씨 편인 섬 주민 전체가 이들을 늘 감시했기 때문에 기회는 자주 오지 않았다. 김씨는 홍씨가 "이발하고 오라"며 읍내에 보내 준 기회를 틈타 어머니 앞으로 '도와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김씨 어머니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소금 구매업자로 위장, 홍씨가 염전을 비운 사이 김씨와 채씨를 구해냈다. 경찰은 이 두 사람을 가족에게 인계했다.

경찰은 강제노역을 시킨 염전 주인 홍씨, 채씨를 팔아 넘긴 무허가 직업소개업자 고씨를 영리목적 약취ㆍ유인 등의 혐의로 형사 입건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또 김씨를 염전에 팔고 달아난 이씨의 뒤를 쫓는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인신매매 후 외딴 섬 등 작업장에서 노동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고용노동부 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하도록 건의할 예정"이라며 "피해방지를 위해 노동착취 피해자를 목격하면 관계기관에 적극적으로 신고해 달라"고 말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