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순이익이 50억원에 못미치는 회사의 외상매출채권을 위조해 3,000억원대 사기대출이 벌어졌는데도 하나은행을 비롯한 13개 금융사들은 1년 가까이 까맣게 모르고 대출을 해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6일 금융감독원과 금융권에 따르면 KT 자회사인 KT ENS는 2009년부터 협력업체 N사로부터 휴대폰 등 통신장비를 납품 받았다. N사는 KT ENS에서 발행한 세금계산서를 근거로 외상매출채권을 발행했다. 어음으로 받은 납품대금을 현금화하기 위해서인데, N사 등 협력업체들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가 외상매출채권을 넘겨받아 이를 금융회사에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금을 받아 협력업체에 지급한다. 대출금은 나중에 KT ENS가 갚게 된다.
N사는 지난해부터 KT ENS와 거래가 없었는데, 물품을 납품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했다. 1년 가까이 사기 대출을 받았지만 이를 알아챈 금융사는 한 곳도 없었다. 사기 대출에는 N사 등 KT ENS협력업체들이 만든 SPC 9곳이 이용됐고, 허위 채권을 만드는 데는 모바일액세사리 전문기업 등 다른 KT ENS 협력업체 명의도 동원됐다.
N사의 사기에는 KT ENS 부장 김모(51)씨의 공모가 결정적이었다. 김 부장은 채권양도승낙서를 받기 위해 찾아온 금융사 실무자들을 직접 만나 KT ENS 직인을 직접 찍어줬다. 금융사에서는 김 부장이 KT ENS 자금담당 혹은 구매담당 책임자인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해당 부서에서 근무한 경력이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출 서류에 김 부장 연락처를 남겨 직접 연락하도록 했고, 금융사 실무자들이 KT ENS에 찾아올 경우 김 부장이 접견실로 직접 나가는 방법으로 의심을 피했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인재개발팀 소속으로 직책은 맡지 못한 채 주로 영업 관련일을 담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 동료들은 김 부장에 대해 평소 근무태도가 좋지 않아서 주변의 평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부장도 잇따라 인사고과에서 하위등급을 받자 불만을 제기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KT ENS가 사건을 알게 된 것은 5일 한 저축은행이 김 부장과 연락이 끊겼다며 회사로 급히 직원을 보냈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그때서야 사기 대출 사건의 정확을 파악하고 김씨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6일 오후 김 부장의 신병을 확보한 회사측이 김부장을 대동하고 경찰에 출두해 이번 사건 수사를 접수시켰다. 경찰 조사에서 김 부장은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사 실무자들은 납품업체와 구매업체가 짜고 달려들면 금융회사로서는 막을 방도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금융사들이 모 기업이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과신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이 이번 사기대출 혐의를 적발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이름으로 이뤄진 여러 건의 대출이 비슷한 주소와 같은 전화번호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개별 금융사들은 이런 대출사기 적발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이 피해를 키운 원인인 것으로 지적된다.
피해 금융사들은 대출서류에 KT ENS의 인감이 찍혀 있었던 만큼 KT ENS 측이 대출금을 상환할 의무가 있다 주장하고 있다. 박세춘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도 "대출서류인 채권양도 확인서에는 KT ENS의 인감이 찍혀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결국 책임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강희경기자 kstar@hk.co.kr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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