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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앞에 겸손하던 건축가, 날 것의 아름다움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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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앞에 겸손하던 건축가, 날 것의 아름다움 담다

입력
2014.02.06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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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프랑스 국립 기메 아시아 미술관이 개관 이래 최초로 현존 인물의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의 타이틀은 '이타미 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나 2011년 도쿄의 한 병원에서 뇌출혈로 세상을 뜨기까지, 이타미 준은 평생을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서 살았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으로, 한국에서는 일본인 취급 받으며 늘 언저리에 머물러 있던 그에게 국가 정체성을 확인해준 것은 엉뚱하게도 프랑스 미술관의 전시였다.

기메 미술관은 이타미 준이 2001년 설계한 제주도의 포도호텔을 비롯해 그의 건축 작품들을 대대적으로 소개하면서 한국의 고미술품들을 함께 전시했다. 이타미 준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조선 백자와 불상, 민화를 그의 건축세계의 뿌리로 지목한 것이다. 장 프랑수아 자리게 기메 미술관장은 "이타미 준은 예술가이자 수집가로, 고려와 조선의 미술품에서 받은 인상을 깊이 명상함으로써 시공을 초월한 독창성을 지닌 예술품을 창조해 왔다"고 평했다.

이타미 준, 한국명 유동룡의 건축 인생을 돌아보는 전시가 마련됐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5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전은 40여 년에 걸친 그의 건축 인생을 시기별로 조명한다. 1971년 일본 시즈오카현에 처음 설계한 '어머니의 집'부터 2010년 서울 평창동에 지은 타운하우스 '오보에 힐스'까지, 총 51개의 건축 작품을 모형과 사진, 설계도, 스케치를 통해 볼 수 있다.

1970~80년대 초기 작품에서는 젊은 건축가 특유의 날카로운 사회의식과 실험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이타미 준은 70년대 일본 예술계를 휩쓸었던 반근대주의 움직임에 깊이 공감했고 이를 건축에 투영했다. 기계적으로 지어진 매끈한 현대건축 대신 흙, 돌, 금속, 유리, 나무 등 자연에서 나온 물질을 가능한 한 날 것 그대로 부각하는 것이 그의 관심사였다. 82년 한국에 지은 이타미 준의 첫 건물인 온양미술관은 흙으로 만든 벽돌을 쌓아 올려 완성됐다. 붉은 벽돌로 지은 한국의 민가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으로, 자연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동시에 자연과 공존하고자 했던 건축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재료에 대한 그의 집착은 90년대에 더욱 강해져 돌로 만든 매우 원시적인 형태의 건축물을 쏟아낸다. 이타미 준의 한국 작업실로 사용된 '각인의 탑'은 주거 용으로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돌로 만든 무덤처럼 보인다. 그는 버려진 돌을 건물에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돌이 가진 천근 같은 무게감을 극대화했다. 건물이라기 보다는 한 덩어리 조각에 가까운 각인의 탑은 내부 공간 노후화로 2008년 다시 지어져 지금은 사진과 설계도로만 확인할 수 있다.

원시적이고 격렬했던 그의 건축은 90년대 후반을 지나 2000년대로 들어서면 포용과 소통으로 화두를 바꾼다. 이타미 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포도호텔, 수∙풍∙석미술관, 방주교회, 두손 미술관이 지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2001년 제주도에 건축된 포도호텔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포도송이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낮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형태의 단층 호텔에서는, 오름과 야트막한 민가로 대변되는 제주도의 풍경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으려는 건축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전시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건축 모형과 설계도의 수준이다. 정교함이나 견고함이 요즘 만들어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해 그 자체로 작품으로 즐길 만하다. 고인의 딸인 건축가 유이화씨는 "아버지께서는 모형에서도 건축물의 모든 디테일을 볼 수 있어야 한다며 완성도에 신경 쓰셨다"며 "요즘처럼 디지털 작업이 없던 때라 손의 감각을 중시하던 시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전시 마지막에는 고인의 사무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책상에는 세상을 뜨기 사흘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설계도가, 그 옆 유리진열대에는 십 수 개의 낡은 여권이 놓여 있었다. 유씨는 "아버지는 일본의 재외국인 등록증을 갱신할 때마다 열 손가락 모두 지문을 찍어야 했다"며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 받는 것 같아 고통스러워하셨지만 끝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셨다"고 회고했다. 전시는 7월 27일까지.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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