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정홍원 국무총리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내각을 통할하는 입장에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여수 기름유출 사고 현장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보인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과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의 책임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한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행태에 대한 사과 표명이었다. 앞서 두 장관도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고 똑같은 말로 공식 사과했으나,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총리가 재차 고개를 숙인 것이다.
■ 현 정부의 대국민 사과는 역대 최대 수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4월 고위공직 후보자 7명이 낙마하자 첫 공개 사과를 했고 5월에는 방미 일정 중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으로, 9월에는 기초연금 축소 논란과 관련해 고개를 숙였다. 노무현ㆍ이명박 전 대통령이 5년간 각각 6, 7차례 대국민 사과를 한 것에 비하면 진도가 빠르다. 장관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간 6명의 장관이 7차례 고개를 숙였으니 가히 '사과 정부'로 불릴 만 하다.
■ 장관 등 고위공직자들의 대국민 사과는 지휘 책임에 관련된 것들도 있고 현 부총리나 윤 장관처럼 자신의 부적절한 언행에서 비롯된 것들도 있다. 경위야 어떻든 간에 불편한 국민감정을 어루만져야 하는 것도 장관들의 몫이다. 때문에 국민적 지탄을 받는 현안에 바로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것이 효과적이긴 하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릴레이 사과'는 문제가 크다. 해당 조직 내부의 신뢰도 하락은 물론 국민에겐 무능한 정부란 인식을 줄 수 있기에 그렇다.
■ 결국 이벤트성 사과로 끝날 게 있고 안될 게 있는 점을 인사권자인 박 대통령이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장관들도 이를 경계로 삼는다. 윤 장관만 해도 인사청문 과정에서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사과한 데 이어 이번에도 본인 문제로 고개를 떨궜다. 그럼에도 논란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근본적 대책 마련이 필요한 것 같다. 국민이 원하는 건 사과하는 정부가 아니라 사과할 필요 없이 국정을 무난하게 이끄는 정부다. 대국민 사과가 만능 열쇠는 아니지 않는가.
염영남 논설위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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