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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2월 6일] 우울한 '분노의 한국'

입력
2014.02.0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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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인 친구가 내게 "도쿄 시내에서 자동차 경적음이 자주 들린다"며 심히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 의미에서 탄성이 나왔다. 일본인은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많기로 정평이 나 있다. 역사 문제에서 계속 말썽을 부리지만, 내부적으로 화합을 중시하는 특유의 인내심과 친절도 등은 높이 사줄 만 하다. 때문에 차량 경적음은커녕 다른 승객에게 피해를 줄까 봐 지하철에서 전화 통화하는 이들도 보기 어렵고, 다리를 꼬고 앉는 이도 드물다. 그런데 최근에는 야간에도, 주택가에도 경적음이 심심찮게 들린다니 분명 변화는 변화인 것 같다.

그는 장기 불황 탓에 경제불안 요소 등이 커지게 되자 사회 전체가 점점 자기중심적으로 변하면서 사납게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논리의 비약일 수는 있다. 그러나 단순히 경적음을 갖고도 타인에 대한 공격성 점증을 걱정하는 것을 보고 좀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우린 어떤 모습인가.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양극화 심화와 취업난 가중, 물가고 등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여기에 대선을 몇 차례 거치면서 정치 노선과 이념은 극단적으로 이분화했다. 국민 갈등이나 분노가 생길만한 요소는 분명히 존재한다. 원인제공 측면에서 보면 일본보다 덜할 게 없다. 문제는 불만감 표출의 정도다.

얼마 전 임순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방송특위 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경축! 비행기 추락 바뀐애 즉사'라고 적힌 종이를 찍은 사진을 리트윗하면서 청와대로 보내자고 적어 파문이 일었다. 즉사를 축하한다니 이 무슨 섬뜩한 내용인가. 또 국회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피살을 언급하면서 딸이 전철을 밟을 수 있다거나, 귀태(鬼胎ㆍ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의 후손이라고 칭하는 등 온갖 저주의 비수가 난무했다. 일각의 저급한 돌출 행동으로 보기엔 너무나 도가 지나치다.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진보진영을 적대시하는 '일베'란 사이트에는 특정 지역 비하에서 종북 덧씌우기 등 차마 옮겨 적기 힘든 내용이 대부분이다. 일반 사이트에도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에 대한 공격성 글은 특정인을 자살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각하다.

작은 일에도 적개심부터 들이대는 것은 직장이나 학교 등 가까운 주변에서 흔히 눈에 띈다. 심지어 종교계에서도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이 정의구현사제단의 정치개입 자제를 호소하자 한 교인이 "차라리 하늘로 올라가시라"는 폭언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야만사회다. 다혈질 민족성을 따질 게 아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폭력적으로 바뀌었는지 개탄스럽다.

사회적 분노가 커지면 합리성은 줄어든다. 애정 어린 비판은 사라지고 자신만의 정당성만 앞세우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우리가 후대에게 물려줄 암울한 자화상이다. 이와 관련 사회학자들은 "극단적인 분노를 쏟아내는 내면엔 사회적 불만에 대한 공허함이 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부터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서둘러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권에서는 입만 열만 사회통합을 외친다. 여야 모두 할말은 많겠지만 국정의 무한 책임을 지는 여권이 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불문가지다. 때문에 박 대통령도, 정부 여당도 반대세력과의 타협이나 협상은 굴욕이나 불의가 아니라 사회통합으로 가는 단계적 과정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시간이 걸려도 그 길로 가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에만 해법을 요구하는 것도 무책임하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개개인이 생각과 방법이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가짐부터 갖도록 해보자. '악(惡)을 악으로 대하면 본인이 악이 된다'는 단순한 사실만 새겨둔다면 변화하지 못할 것도 없다. 여기서 염 추기경이 서임에 즈음해 한 말이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웃을 넘어 형제처럼 살아가는 꿈입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꿈이 아주 작게라도 현실화했으면 좋겠다.

염영남 논설위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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