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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2월 6일] 음악가에게 박사학위?

입력
2014.02.0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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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옛 제자를 만났다. 많이 기대했던 제자였기에 얼마나 향상되어 있을까를 궁금했는데 실제 연주를 들어 보니 오히려 전만 같지 않았다. 따금하게 연습을 좀더 하라고 충고했는데 어처구니 없게 공부하느라 바빠서 연습할 시간도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공부하려고 유학을 가서 공부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가 도무지 이해가 안됐는데 알고 보니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한국의 젊은 음악인들이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 천금 같은 시간과 비용을 쓰고 있다. 이유야 간단하다. 한국에 와서 교편을 잡으려면 대학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시간강사 조차도 석, 박사학위를 요구하며 배점 비중도 크다. 아직 한국에서는 예술만을 가지고 기본생활을 충족하기는 요원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자리를 잡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너무나 많은 공급이 이루어 지고 있어 그 경쟁을 위한 스펙이 요구되는 것이다.

학위를 임용조건으로 요구하는 이유는 가장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획일적 행정이 만들어낸 요식행위다.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 잘하는 사람을 선호하는, 필요이상의 겉치레가 만연한 한국적 사고방식이 부른 비극이다. 음악가는 무릇 자유롭게 여행하고 경험하며 사람과의 만남과 연주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음악가가 학위를 위해 전념한다는 것부터가 난센스다. 학위를 취득하면 연주가 더욱 견실해 진다는 통계라도 있는 건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학위를 취득한다고 해서 연주자의 격이나 음악의 질이 크게 향상되지는 않는다. 논문 주제부터 대부분 지도교수의 주장이나 필요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연주자 자신의 개인적 욕구나 갈망을 채우기도 힘들다. 혹시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가 학위를 따면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지. 어느 한 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하여 식견을 가지게 됨은 긍정적인 부분이지만 그렇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거기에 박사학위를 취득해도 논문으로 취득한 박사와 연주로 취득한 박사의 점수가 다르다고 한다. 그럴 바엔 음대에서 왜 연주자를 배양하는지.

한국에서 예술은 언제부터인가 학문의 한 분과가 되어 버렸다. 단언컨대 예술은 예술의 잣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예술을 학문으로서 접근하는 것은 그 분야에 매진하는 몇 명이면 족하다. 미국에서도 음악교육은 전문적인 음악인을 기르는 교육과 전인적인 지식인을 양성하는 곳, 둘로 나뉘어 진다. 솔직히 많은 외국의 대학들이 한국인 연주자들을 위해 박사학위 과정을 신설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것 아닌가.

남자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콩쿠르에서 입상하면 병역을 감해주는 조치가 있다. 이 제도의 취지는 연주자로써 성장해야 될 중요한 시기에 몇 년간의 군생활로 인해 발전에 저해되지 않기 위해서 신성한 국민의 의무를 면제시켜주는 사회적 배려다. 군생활 몇 년조차 이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이는데 학위로 인한 부작용은 남녀 공통이다. 왜 심각하게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어처구니 없는 영어강의광풍이 불었다. 러시아에서 공부한 연주자에게 영어로 강의하라고 공채심사를 요구하는 어처구니 없는 대학도 있었다. 많은 대학에서 임용조건에 박사학위나 그에 준하는 경력을 요구한다. 그에 준하는 경력이라니.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에게도 실례고 그 수준을 어떻게 비교, 재단해서 적용하는지 알 길이 없다. 오랜 경험을 통한 공정한 기준이 있다고 하지만 외부로 이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을 얼마나 충분히 했던가. 영어와 학위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유추해보면 누구나 알 거라고 믿는다.

부연하지만 자신의 학위를 속이고 대학에 자리잡으려는 이들을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명색이 교육기관에 어린 학생들을 상대할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학위나 연주실력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성실함과 도덕성이다. 학위를 조작하는 이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제대로 하려면 이런 부분부터 명확하게 걸러냄이 훨씬 객관적이 아니겠는가.

류재준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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