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궁은 수 십 년째 세계 최강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자 대표팀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단체전 7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까지 세웠다. '맞춤형 훈련'이 원동력이었다. 대표팀은 매회 올림픽에 앞서 해병대 캠프, 야간 공동묘지 행군 등을 통해 집중력과 평정심을 키웠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활시위도 당겼다. 여기에 남녀 대표팀이 성(性)대결을 펼치며 묘한 긴장감을 유지한 것도 탁월한 훈련법 중 하나였다.
동계올림픽 2연패를 노리는 이상화(25ㆍ서울시청), 모태범(25ㆍ대한항공)도 최고의 스파링 파트너를 만났다. 양궁 대표팀과 마찬가지로 성대결이다. 이상화와 모태범은 4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이틀째 훈련에서 스타트 라인에 함께 섰다. 케빈 크로켓(캐나다) 대표팀 코치의 출발 신호에 따라 50m 레이스를 벌였다.
둘의 성별이 다른 만큼 핸디캡이 적용됐다. 실제 500m 경기와는 달리 모태범이 이상화보다 5m 가량 뒤에서 스타트를 했다. 결과는 1승1패. 모태범이 인코스, 이상화가 아웃코스에 선 첫 번째 레이스에서 모태범이 이상화를 멀찍이 제쳤다. 그러나 잠시 뒤 코스를 바꿔 치른 두 번째 레이스에선 이상화가 살짝 앞섰다. 둘이 거의 동시에 들어와 한 동안 농담 섞인 설전이 벌어졌지만 크로켓 코치가 결국 이상화의 손을 들어줬다.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는 초반 스타트(100m)가 가장 중요하다. 레이스 막판 폭발적인 스퍼트도 비중이 크지만, 사실상 첫 코너를 돌기 전 메달 색깔이 갈린다. 이상화는 2013년 11월 세계신기록(36초36)을 세웠을 당시 100m 기록이 10초09였다. 스타트가 강점인 모태범은 9초 중후반대 기록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크로켓 코치가 둘을 나란히 출발대에 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이상화와 모태범이 성대결을 펼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압도적인 기량을 자랑하는 이상화는 여자부에서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태릉 빙상장에서도 남자 선수를 파트너 삼아 훈련하는 일이 잦았다. 그럴 때 대학 동기이자 절친인 모태범이 '도우미'를 자청했다. 이날 역시 '결전의 땅' 소치에서 평소와 같은 훈련 패턴으로 집중력과 긴장감을 유지했다. 100m가 아닌 50m였고 핸디캡도 있었지만 두 대회 연속 금빛 레이스를 향한 '맞춤형 훈련'을 소화했다.
이상화는 이번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500m 2연패를 정조준 하고 있다. 보니 블레어(미국), 카트리나 르메이돈(캐나다) 등 단 2명만이 성공한 세계 빙속 역사에 당찬 도전장을 내밀었다. 2010 밴쿠버 올림픽 남자 500m 금메달리스트인 모태범은 1,000m 금메달이 목표다. 미국의 샤니 데이비스가 강력한 라이벌이다.
크로켓 코치는 "두 명 모두 최고의 선수답게 스케이팅을 매우 잘했다"면서 "이상화는 오늘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줬다. 모태범은 언제나처럼 빨랐고 기술적으로도 훌륭했다"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소치=최형철 기자 hcchoi@hk.co.kr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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