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공무원이 자신이 관리하는 정부 전산망에서 5년간 12만여 건의 개인ㆍ기업정보를 빼내 국가지원금을 타내는 노무사 영업에 활용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정부가 카드사 정보유출 사건과 관련해 연일 강도 높은 제재와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안방의 정보 도둑'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고용부 관악지청 과장 최모(58)씨와 노무사 자격증을 빌려 노무법인 대표로 활동한 동생(52)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5일 밝혔다. 경찰은 또 법인의 회계업무를 담당한 딸(29)과 영업사원을 관리해 온 형(64) 등 최씨의 가족 4명, 자격증을 빌려준 노무사 3명 등 1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2008년 8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고용부의 '고용정보시스템'에서 국가지원금 대상 관련정보 800만건을 조회, 개인정보가 포함된 12만8,000여건을 빼돌렸다. 이 정보는 최씨가 가족 등 일당 13명과 불법 운영한 5개 법인의 영업 정보로 활용됐다.
최씨 등은 기업 관련 정보를 활용해 영세업체들에 접근해 고용부가 지급하는 19개 국가지원금 신청을 대행하고 고액의 수수료를 받아 챙겼다. 직원들의 근무기간 정보를 활용해 신규 고용촉진 장려금을, 주민등록번호로는 고령자 다수고용 장려금을 신청하는 식이었다. 절차를 몰라 국가지원금을 받지 못했던 영세업체들은 지원금의 30%를 이들에게 수수료로 주면서도 쉽게 위임장을 써줬다. 일반적인 노무사 수수료는 10~15% 선이다. 최씨 일당이 고용한 영업사원은 300여명, 지원금 위임 수수료로 챙긴 돈은 58억여원에 달한다.
조사 결과 최씨는 경찰이 지난해 6월 자신의 아이디로 정보 조회한 기록을 요청하는 등 수사가 진행 중인 것을 알면서도 10월까지 정보 무단 조회와 유출을 계속한 것으로 밝혀졌다. 5년 넘게 이어진 최씨의 범행을 고용부는 까맣게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정보 유출은 해킹보다 정보 관리자를 통해 더 자주 일어난다"면서 "정보를 다루는 직원일수록 더 확실한 보안의식을 갖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고용부는 이날 정보 관리자가 개인정보를 조회할 때 소명 절차를 의무화하고 정보를 출력하거나 저장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 고용보험 관련 문서에 들어있는 개인정보를 암호화하고, 한꺼번에 많은 정보를 조회하는 등 의심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경보를 발령하는 시스템도 구축하기로 했다. 아울러 영세업체들이 정부지원금 지급절차를 몰라 일어난 사건인 만큼 지원금 홍보도 강화할 방침이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