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의 2차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가 발표된 지난달 30일 시장상황점검회의를 통해 "미국의 추가 테이퍼링은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등을 고려할 때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2일 "미국의 추가 테이퍼링은 예견된 이벤트로서 단기적 시장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설 연휴가 끝난 뒤 국내 금융시장은 분명 금융당국의 낙관적 전망과는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의 호언대로 한국은 정말 안전지대일까.
가장 주목할 부분은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에서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는 점이다. 1월 내내 시나브로 돈을 빼갔던 외국인은 3일과 4일, 불과 이틀 만에 1조원이 넘는 투자금을 거둬들였다. 올 들어 외국인이 주식시장에서 빼간 2조6,000억원 가운데 40% 가량이 최근 이틀에 몰려있는 것. 미국 테이퍼링의 여파가 신흥국 통화위기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4일 코스피가 5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1,890선대를 밑돌게 된 것도 이 같은 불안심리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4일 파생상품 전문기업 슈퍼디리버티브즈(SuperDerivatives)에 따르면 전날 기준 한국 국채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75.77bp(1bp=0.01%포인트)로 집계됐다. 78.56bp를 기록했던 작년 9월 30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 CDS는 채권을 발행한 기업이나 국가가 부도를 내더라도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보장한 파생상품으로, 부도 위험이 클수록 프리미엄이 높아져 통상적으로 국가나 기업의 부도위험 지표로 여겨진다.
이런 상황에도 금융당국의 우리나라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다. 3,450억달러(작년 11월말 기준) 규모의 외환보유액과 707억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 등이 글로벌 경기 확장 국면과 맞물려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증시폭락에도 금융당국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의 경기 지표가 좋지 않게 나온 것에 대한 단기적 영향"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의견 역시 금융당국과 비슷하다.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 중심으로 경기 회복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주변 국가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작년 5월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를 언급한 즉시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거렸지만, 두세달 뒤 우량 신흥국을 중심으로 매수세가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는 "당분간 국내 증시가 저점을 유지하겠지만 늦어도 3월말에는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되살아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당분간 미국과 중국의 경제지표의 영향을 받겠지만 계속 혼란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전날보다 0.7원 내린 1,083.8원에 거래를 마친 원ㆍ달러 환율에 대해서도 두 전문가는 1,070~1,100원 사이에서 변동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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