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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2월 5일] 주민등록번호, 시민 손에 달렸다

입력
2014.02.0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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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터진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 때문에 민감해져서인지 오늘따라 스팸 문자가 유독 짜증스럽다. 어디선가 내 휴대폰 번호가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확실한데, 주민등록번호의 경우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주민등록번호 유출은 어떤 개인정보보다도 큰 문제를 야기한다. 예컨대, 휴대폰번호나 신용카드번호가 유출되었다면, 번호를 바꾸는 식으로 추가 피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주민등록번호에는 그런 방법이 안 통한다. 변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너무 익숙하게 사용되어 와서 그렇지, 전 국민에게 태어나자마자 평생 바꿀 수 없는 번호를 부여한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한 것이다. 1960년대 무장공비 침투 후 간첩 색출을 위해 전 국민에게 부여되었다는 주민등록번호의 기원을 듣고 나서야, 그 '시대적' 맥락이 겨우 이해될 뿐이다.

게다가 이 번호에는 다른 수많은 개인정보가 연동되어 있다. 여권이나 운전면허증에는 아예 주민등록번호가 병기되어 있고, 다른 공ㆍ사 영역에서의 신분확인 역시 주민등록번호를 근간으로 한다. 주민센터에서 등본을 발급받을 때는 물론이고, 병원, 학교, 은행, 보험회사, 심지어 동네커피점에서 포인트를 모을 때에도 주민등록번호로 본인임을 인증받는다. 그러니 대한민국 국민에게 주민등록번호는 신체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출되었을 때의 피해 정도 역시 다른 개인정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수밖에 없다.

이번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태는 그런 예고된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주민등록번호제도 자체를 전면 재검토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개인정보 문제에 별반 관심이 없던 몇몇 언론들까지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했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부 차원의 재검토도 시작되었다. 여당 대표는 아예 임의번호화와 번호변경이라는 구체적인 대안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기왕에 바꾸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근간을 뜯어고쳐야 한다. 주민등록번호 폐지까지 논의를 열어둔, 말 그대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주민등록번호는 다른 개인정보로 통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모든 문을 다 열 수 있는 '만능열쇠'나 다름없다. 편리한 만큼 그 위험성도 높다. 이러한 만능열쇠가 유출되었을 때 우리는 보통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가. 당연하게도 그 열쇠부터 교체해야 한다. 즉, 주민등록번호의 변경을 허용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정한 요건에 부합하면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해주거나, 아예 주기적으로 번호를 갱신하는 것, 주민등록번호를 주민등록증의 발행번호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이름도 바꿔주는데, 주민등록번호를 바꿔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차제에 만능열쇠 자체를 없애고, 각 문마다 각기 다른 열쇠를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열쇠 하나가 유출되어도 대형사고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번호사용이 불가피하다면, 주민등록, 여권, 운전면허, 건강보험, 조세 등 영역에 따라 각기 다른 번호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의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대형사고의 여파로 지금은 비판의 목소리가 뜨겁지만, 그 열기가 사그라지고 나면 작금의 상황이 마뜩잖은 세력들의 반격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국민들을 쉽게 관리하는 것에 익숙한 행정부와 민간영역에서 그 혜택을 누려온 기업들이 슬슬 목소리를 낼 것이다. 그들은 주민등록번호체제 변경에 따른 천문학적 비용을 거론하며, 이런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냐고 으름장을 놓을 것이다. 주민등록번호가 가져다주는 편의를 상기시키며,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적잖이 불편해질 텐데 정말 괜찮겠냐고 집요하게 물을 것이다. 시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생활을 감수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한, 나의 정보에 대한 권리를 지키겠다고 끝까지 버티지 않는 한, 주민등록번호는 우리의 삶을 계속 지배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 논의가 어떤 결론으로 귀결될 것인지는 온전히 시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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