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일 일본 도쿄에서 지사 선거가 치러진다. 그리고 한 달 뒤 프랑스 파리에서도 시장 선거가 있다. 파리와 도쿄는 30년이 넘는 자매우호도시다. 동과 서를 대표하는 국제도시 중 하나라는 점도 닮았다.
하지만 거의 나란히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 두 도시의 다른 모습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자체장 후보가 한 곳은 여성이 압도하고 있고 한 곳은 남성 일색이다. 여성이 많은 곳은 어디고, 남성이 많은 곳은 어딜까. 맞다. 파리는 첫 여성 시장을 맞을 준비에 들떠 있고 도쿄는 평균 연령 70세에 가까운 남성 후보 16명이 각축을 다투고 있다.
3월 23일과 30일 치러지는 파리 시장 선거에는 현재 5명의 후보가 등록했다. 당선 유력은 일찌감치 여당인 사회당과 제1야당인 중도우파 대중운동연합(UMP)의 두 후보로 압축됐다. 사회당에선 베르트랑 들라노에 현 시장의 3선 불참 결정으로 부시장인 안 이달고(54)가 나왔다. 이에 맞서는 사람은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 환경장관을 지냈고 지난 대선에서 사르코지 캠프의 대변인으로 활약했던 나탈리 코스키스코모리제(40)다. 둘 다 여성이다. 누가 이기든 여성 시장이 탄생하게 돼 있다.
당선 가능성은 낮지만 좌익당의 다니엘 시모네 후보도 여성이다. 남성은 국민전선의 발르랑 드 상주스트, 녹색당의 크리스토프 나즈도브스키 둘이다. 선거를 눈앞에 두고 후보들의 면면이 바뀌었지만 지난해 중반까지는 중도파 민주운동의 마리엘 드 사르네즈와 녹색당 대표 세실 뒤플로드도 등 여성 후보가 물망에 올랐다. 간접선거로 선출되는 파리시장은 시내 20개 구역에서 뽑힌 시의원 163명이 투표해 최종 결정한다.
파리 시장은 터줏대감처럼 오래 재임했던 자크 시라크가 대통령이 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이 큰 자리지만 이제껏 여성이 당선된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통해 프랑스 여성정치계가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 이달고 후보는 시청 근무만 13년째다. 그는 공공주택과 탁아소 확충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모리제는 정치 엘리트 집안 출신으로 사르코지 정부 시절 언론의 조명을 받아 우파의 스타로 떠올랐다. 모리제는 파리시장을 발판 삼아 첫 프랑스 여성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지금까지 여론조사에선 이달고가 약간 앞서고 있다.
막바지 열기가 뜨거운 도쿄 지사 선거는 당선 유력 후보인 마스조에 요이치 전 후생노동장관과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 외에도 극우파 다모가미 도시오 전 항공막료장, 공산당 사민당 등 추천의 우쓰노미야 겐지 변호사 등 좌우를 가릴 것 없이 모두 남성이다. 30대의 정보기술 관련회사 임원인 이에이리 가즈마 후보를 제외하면 80대가 3명, 70대가 3명, 60대가 7명이다.
이번까지 포함해 전후 치러진 19차례의 도쿄 지사 선거에 나온 여성 후보는 모두 7명에 불과하다. 최근 3차례 선거에서는 여성 후보가 한 명도 없었다. 이 때문에 일본 인터넷에서는 “도쿄 지사 후보는 왜 여자가 없나” “일본 여성은 정치에 절망했는가”라는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프랑스가 모범적인 ‘성차별 없는 국가’인 것도 아니다.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 보고서’에서 프랑스는 아이슬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양성평등국가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60위권이다. 인구 10만이 넘는 프랑스내 40개 도시 중 여성시장은 5곳에 불과하다는 조사도 있다. 시장 선거에 나선 이달고 후보 역시 “오랫동안 프랑스 정치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고 지금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모리제도 “한번은 자크 시라크 대통령, 또 한번은 프랑수아 피용 총리 때 임신을 해 장관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런 프랑스에서 어떻게 파리 시장 자리를 놓고 여성 후보끼리 다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걸까. 프랑스가 2000년에 도입한 ‘후보자 남녀동수법’(파리테법)에서 비결을 찾는 사람도 있다. 중앙, 지방선거에서 정당들이 내세우는 후보자를 의무적으로 남녀 반반으로 하도록 강제한 법이다. 이 법의 도입으로 프랑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것은 말할 것 없고 그 동안 정치를 멀리하던 여성들이 대거 정계로 진출하면서 프랑스 정치 체질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지난해 출범한 올랑드 정권의 장관 34명 중 여성은 자연의 성 비율 대로 딱 절반인 17명이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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