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목사 등 1인 32역 500번 넘도록 무대 오르며 10년의 세월 남김없이 소진"수없이 반복한 연기지만 매번 다른 무대에서는 기분 처음엔 힘과 에너지로 연기이젠 작품에 녹아든 삶 음미 형벌을 주다 마지막에 왕관을 안겨 주는 작품이죠"
10년은 무언가 온전히 이루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고, 강산이 변하는 오랜 세월이다. 하지만 배우가 이 시간 동안 하나의 작품에 매달린다는 것은 형벌에 가까운 고행이다. 끊임없이 돌을 굴리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시포스처럼, 같은 대사를 말하고 어제의 의상을 다시 입으며 변함없는 무대에 오르는 일은 성실만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배우 김성녀(64)에게 1인극 '벽속의 요정'은 10년의 세월을 남김없이 소진한 작품이다. 2005년 6월 10일 서울 우림청담시어터에서 남편 손진책(극단 미추 대표)의 연출로 첫 무대에 오른 후 10년 동안 500번 넘게 거듭해온 '벽속의 요정'에 대해 김성녀는 "김성녀라는 배우의 조각을 모두 모아 이뤄낸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달 16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벽속의 요정' 10주년 공연을 하고 있는 김성녀를 4일 극장 분장실에서 만났다.
서른두 개의 배역. 4살배기 어린아이, 파나마 장이라 불리는 건달, 목사, 군인 등 한 무대에서 배우 홀로 연기해내기에 만만치 않은 배역들이다. 이 역할들은 '요정'이란 이름으로 모습을 감춘 채 이데올로기가 판치는 격동기를 살아내야 했던 아버지와 가족의 역사를 오롯이 그려내는 우리 주변의 인간군상이다. 순덕이라는 여성의 일생을 담은 '벽속의 요정'은 이제 '김성녀의 벽속의 요정'이란 이름으로 불릴 만큼 김성녀에게 체화됐다. "10년 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이제 나이가 들어 힘드니 남편(손진책)에게 대사를 좀 잘라달라 했지만 그랬다간 극의 완성도가 망가진다며 손사래를 쳤어요. 심지어 의상과 소품도 그대로죠. 고맙게 10년 전 중학생 교복도 지금 그대로 맞아요. 1막 내내 입는 윗도리만 하도 낡고 바래 몇 년 전 바꿨을 뿐이죠."
진부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관객은 물론 배우에게도 10년의 반복은 변화 없이 버티기 오랜 세월이다. "수백 번 같은 연기를 반복했던 작품이지만 매번 다른 무대에 서는 기분이죠. 장면과 배역이 살아있다고 할까. 어떤 날은 이 장면에 울컥하고, 다음 날은 저 장면에 눈물이 솟아요. 공연 9년째인 지난해 고양 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 섰을 때 문득 진부함에 대해 떠올렸어요. 하지만 객석의 반응은 첫 무대와 다름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10년 공연을 넘어 언제까지 계속할 것이라는 한계를 마음속에서 지우게 됐죠. 장민호(2012년 작고), 백성희 선생님이 공연한 '3월의 눈'을 기억하며 나이 때문에 좋은 공연을 그만둔다는 생각은 너무나 건방지다고 자책했어요."
10년 전에도 모노드라마를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54)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김성녀는 나이 먹어 '벽속의 요정'을 만난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한다. "아마 서른 즈음 시작했다면 까부는 마음에 10년을 이어오지 못했을 거예요. 처음엔 이른바 '배우술'을 마음껏 펼치겠다. 자랑하겠다는 마음이 100%였어요. 힘과 넘치는 에너지로 연기했죠. 하지만 지금은 무대와 배역을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작품에 녹아있는 인간의 삶, 그리고 메시지를 차분히 음미하며 연기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건달역을 연기할 때 흥에 겨워 오버한다고 남편이 지적하곤 하죠. 순덕이가 처녀가 되어 살랑살랑 춤추는 장면은 연기하기 여전히 쑥스러워요. 오히려 어린아이를 연기하긴 쉬워요. 아이와 늙은이는 공통분모가 있으니까요. 형벌을 주다가 마지막에 왕관을 안겨주는 작품. 항상 신인 같은 마음으로 무대에 서게 하는 그런 작품입니다."
김성녀는 배우의 삶과 더불어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의 생활도 겸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그는 창극의 대중화에 공을 세웠다는 평을 받아왔다. 반대로 창극의 본질을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예술감독으로서 목표는 창극의 변신이었죠. 창극은 창과 극의 만남이니 시대상을 담고 변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전까지 창극을 보지 않던 기자들이 변화된 창극을 보고 글을 쓰면서 창극을 어렵게 대하던 관객의 입길에 오르며 대중화가 진행됐죠. 저는 계속 변화할 것입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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