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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2월 4일] 대학은 노예인가

입력
2014.02.0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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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총장 추천제 해프닝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재벌기업이 지배하는 대학 현실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을 뿐인 것은 나 혼자 만일까? 교육부가 대학 정원을 조정한다는 발표에 대해서도 국가가 지배하는 대학의 현실을 마찬가지로 느꼈을 뿐이다. 최근 몇 년 간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대학을 그만 두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어느 직장인에게도 그런 고민은 있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그러했다. 고민 고민 끝에 6년 전쯤, 고시학원 같은 법학부에서 교양학부로 옮기는 것으로 최소한으로나마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했다. 대학은 물론 나라와 세계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교양의 회복이라고 생각해 30년가량 근무한 법학부를 미련 없이 떠나 교양학부의 유일한 교수가 됐지만, 개혁은커녕 그곳에 속한 시간강사들처럼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한 노예 같은 신세로 전락했을 뿐이다.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음은 물론, 대학 행정이 멋대로 정한 교육과정, 교과목, 개설강좌수, 강의시수, 보수, 근무기간 등에 노예처럼 따라야 하는 노예 같은 신세다. 학부를 바꾼 뒤 내가 담당했던 교양과목은 학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그 개설강좌수가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반 이상으로 줄어졌고, 새로운 교양과목의 신청도 아무런 설명 없이 거부되었으며, 근무조건은 더욱 나빠졌다. 내게 주어진 전공과목도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개설되다가 말다가 했다. 교육에 대한 교수의 최소한의 권리조차 철저히 거부된 점에 항의도 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남은 것은 그만 두느냐 노예처럼 사느냐 하는 것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학에서 교육이든 연구든 행정이든 학생이든 모든 것이 전공과목 중심이고 전공을 떠나면 노예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삼성의 총장추천제 실시가 유보되어 다행이지 그것이 실시되었다면 틀림없이 학과별 나눠 먹기식으로 되거나 나눠 갖지 못한 학과들의 엄청난 저항이 있었을 것이다. 학제니 통섭이니 교양이니 고전이니 하지만 그것도 전공 위에서의 이야기다. 행정의 권위주의는 더욱 강력해졌고 1990년 대 이후 조금씩 주어진 교수나 학생의 자치는 완전히 사라졌다. 대학은 취업 준비 학원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교수는 취업을 위한 전문 기능공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기업이 대학을 지배하고 소유하는 것도 이상하기커녕 바람직할 지경이니 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현상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산학협동이 아니라 산학일체, 더 정확하게는 산업에 대학이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자본주의의 첨단이 대학이다.

교양교육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종래의 교양교육이라는 것이 여러 전공학과의 입문 과목을 늘어놓은 사이비 교양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 것 대신 학제적이고 통섭적인 교양과목을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교양과정을 새로 짜기커녕 내 과목마저도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6년 전 법학부를 없애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로 전환한 취지에도 학제적 교양 교육이 중요했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신림동 고시학원을 방불케하는 로스쿨에서 그 개설조차 거부당했기에 교양학부로 갔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름만 교양학부이지 실제로는 전공의 만리장성 밖에 내던져진 쓰레기통 같은 것에 불과했다.

근대 대학이 시작된 유럽에서는 교양(리버럴)의 반대말이 노예다. 종교적 초월성, 정치적 계급성, 기술적인 유용성 그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는 자유와 독립을 뜻한다. 나아가 인문학과 예술 등의 리버럴한 교양적 이성 위에서 법학이나 의학 같은 전공을 발전시키는 지적 과정의 순환이 대학의 이념이고 학문의 체계다. 자크 데리다는 그런 자유의 대학을 조건 없는 대학이라고 했다. 학문적 자유는 물론이고, 문제를 제기하고 명제를 제시하기 위한 무조건의 자유를, 나아가 연구, 지, 진리에 대한 사고를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공적으로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대학은 요청하고 그 중심이 교수와 학생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대학은 권력과 재벌의 노예이고, 교수와 학생은 그 노예 밑의 노예가 아닐까?

박홍규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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