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원룸에 살고 있는 30대 김모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월세와 별개로 내던 관리비를 5만원에서 15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집주인은 "전기세와 수도세 인상분과 건물 청소비 등의 비용을 새로 추가한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갑자기 관리비를 세 배나 올리는 법이 어디 있냐고 따지니 "그럼 다른 집을 알아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같은 건물에 사는 다른 세대들은 "관리비 인상 얘기를 들은 바 없다"고 한다. 그제서야 그는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김씨는 연말정산을 준비하다 월세 소득공제를 통해 수십 만원 가량 세금을 환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씨는 "서류 제출을 위해 집주인에게 월세 납부액에 대한 현금영수증을 달라고 하자 방법을 모른다며 시간을 끌더니 마지못해 서류를 주더라"며 "그로부터 며칠 뒤 관리비 인상 통보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 소형 아파트에 월세로 살고 있는 40대 이모씨 역시 연말정산을 하다 집주인에게 황당한 얘기를 들어야 했다. 그가 매달 40만원씩 낸 월세에 대해 소득공제를 받으려 하자 집주인은 "월세는 20만원이고, 나머지는 관리비 명목이었다"고 말을 바꿨다. 결국 임대차 계약서를 제시해 40만원에 대한 소득공제에 받아냈지만 며칠 뒤 "다음달부터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집주인은 "소득공제를 신청하지 않는 세입자만 받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연말정산 기간에 월세 소득공제를 신청한 세입자들이 집주인의 보복성 조치에 몸살을 앓고 있다. 월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정부가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있지만 현실에선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연말정산부터 무주택 근로자에 대한 월세 소득공제가 40%에서 50%로 확대되고, 내년에는 60%로 늘어난다. 공제한도도 최대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확대되고, 확정일자를 받지 않아도 계약서와 주민등록상 주소만 일치하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월세 소득공제 혜택이 확대되고 있지만 실제로 이를 누리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2년분 연말정산에서 월세 소득공제를 받은 세입자는 9만3,470명으로 전체 월세 가구의 2.8%에 불과했다. 서울 노고산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대부분 세대주는 임대소득을 실제보다 50~70% 수준으로 신고하는데 한 가구만 실제 금액대로 소득공제를 받아도 전체 소득이 노출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문제는 집주인이 신고를 못하게 하거나 보복을 해도 '을'인 세입자가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집주인과 관계 때문에 소득공제를 못 받은 경우에는 나중에 이사를 한 후 3년 이내에 세금을 다시 산정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경정청구제도를 이용하는 게 그나마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세대주의 인식을 바꿀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종훈 국민은행 세무사는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투명성을 강화하는 한편 세금부담을 완화해주는 등의 유인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이대호 인턴기자 (서강대 미국문화학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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