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유명인들의 화제를 다뤄 판매부수를 올리는 프랑스 주간지 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배우 줄리 가예의 정사(情事)를 보도해 세계적인 뉴스가 됐다.
밤늦은 시간 하얀 오토바이용 헬멧을 뒤집어 쓴 한 사나이가 스쿠터를 타고 엘리제 인근의 호화 아파트 앞에 내린다. 얼굴이 완전히 가려져 있으니 스쿠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시간을 인근 아파트 계단 창문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다. 커다란 망원 카메라를 들고 숨죽이고 있던 두 명의 파파라치(유명인을 쫓아다니는 카메라맨)다. 는 표지 전면에 이 사진을 싣고 일곱 쪽에 걸쳐 두 사람의 사연을 다룬 특집호를 발행했다. 80만부가 팔려나가는 '대박'이었다. 이 기사는 통신을 통해 전세계로 전파됐다.
올랑드 보도 "쓰레기" 취급 받아
올랑드-가예 커플은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하지만 프랑스인, 특히 프랑스 정치인들의 반응은 이 사건을 재미난 스캔들로만 여기는 해외와는 정반대로 싸늘했다. '68혁명'의 주인공으로 현재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콩방디를 비롯해 좌파 정치지도자들은 의 보도가 정치인의 사생활 보호법과 언론 윤리를 어긴 "쓰레기"라고 비판했다. 우익 정치인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입이 거칠기로 유명한데다 지금까지 좌파 정부(올랑드는 좌파다)를 한 번도 좋게 말한 적이 없는 극우정당 '국민전선(프롱 나쇼날)'의 당수 마린 르펜은 의 올랑드-가예 보도에 대해 "국민의 세금을 단 한 푼이라도 축내지 않는 한 누구나 자기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올랑드를 적극 옹호했다.
이번 사건을 다룬 프랑스 언론의 제목도 흥미롭다. 어떤 매체는 '클로제르 게이트'라는 제목으로 관련 보도를 했다. 다른 신문은 '가예 게이트'라고 썼다. 짐작하는 대로 '가예 게이트'는 사건의 흥미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클로제르 게이트'는 주간지 보도에 무슨 문제점이 있었나에 더 비중을 둔 것이다. 지금까지 프랑스 언론이 엘리제궁(대통령)의 염문을 크게 기사화한 일이 없었는데 가 처음 이슈로 만들어 '기록'을 세운 점을 강조한 것이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의문이지만, 어떤 매체의 경우 조직의 비밀을 지키기 위한 마피아의 침묵 계율 '오메르타'를 거론하며 가 엘리제의 오메르타를 깼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대통령 사생활 보도 않는 게 관례
프랑스에서 대통령의 여자 문제가 지금까지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프랑수아 미테랑의 경우, 재임 중 안 팽조 부인과 '두 집 살림'을 했다. 영부인 다니엘도 알고 있었지만 침묵을 지켰다. 소수이긴 하지만 언론인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생활 보도 금기를 의식하고 기사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려 19년이나 그의 외도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미테랑이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994년 파파라치가 미테랑과 딸 마자린이 파리 시내 한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촬영해 보도하면서 미테랑의 여자 관계가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됐다.
프랑스에서는 정치인의 사생활 보도와 관련해 언론과 정치인 사이에 일종의 암묵적인 약속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때 아랍계로 법무장관에 임명돼 화제를 모은 라시 다티가 있다. 그런데 다티 장관이 임신해서 아이를 낳았다. 결혼도 안 한 장관이 출산까지 했으니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자들이 장관에게 아이 아버지가 누구냐고 끈질기게 물었다. 그러나 다티는 사생활 문제라며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언론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처녀 장관이 애를 낳았어도 당당하게 사생활 보호를 주장할 수 있고 언론도, 프랑스 사회도 그것을 인정한 것이다.
남녀관계에 가장 관대한 나라 프랑스
'공인(公人)의 사생활 보도는 터부인가'라는 문제는 이처럼 정치인 등의 여자관계가 불거질 때마다 제기되는 문제다. 공인도 사람이다. 그냥 평범한 사람과 다른 것은 그들의 삶이 '사생활'과 '공적 생활'의 두 가지 측면을 지닌다는 점이다. 두 가지 측면이 상충한다고 여기거나 또는 상충하는 것 아니냐며 문제를 삼으려 들 때는 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
프랑스에서는 외도를 도덕 문제라기 보다 남녀가 좋아하면 있을 수 있는 관계로 보는 사람이 많다. 남들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는 사생활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인이 남녀관계를 관대하게 보는 것은 섹스에 대한 그들의 가치관과도 관련이 있다.
올랑드-가예 관계가 화제가 된 뒤 미국 퓨연구소에서 부부 중 한 사람이 외도를 했을 경우 다른 한 쪽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기는 비율이 국가별로 어떻게 다른지 조사한 결과를 내놨다. 프랑스의 경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응답은 47%였다. 배우자가 외도를 하더라도 그것을 절반 이상인 53%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한 것이다. 다른 나라는 어땠을까. 이웃나라 독일도 60%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했고 이 비율은 이탈리아(64%) 러시아(69%) 영국(81%) 한국(81%) 미국(84%) 순으로 높아진다. 이슬람권은 90% 이상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조사 대상 39개국 중에서 프랑스가 최하위였다. 그 만큼 부부의 외도에 관대(?)하다는 이야기다. 서구 국가 중에서도 프랑스 사람들은 영미 사람들과 생각이 여러 가지로 다르다는 말이 이런 조사로 입증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공직을 수행하는 사람의 여자 관계까지 그렇게 관대하게 봐줘야 하느냐는 것이다. 공인은 언론의 감시 대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프랑스 언론은 감시 대상인 정치인의 여자 관계를 보도나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생활로 봐왔다. 이번 올랑드-가예 관계에 대해서도 프랑스 언론들은 신중하다.
하지만 그런 프랑스 언론들조차 의 폭로로 불거진 공인의 사생활 보도 문제에 만인이 공감하는 합의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고 느끼는 듯 하다. 그래서 다양한 의견을 내놓으면서 합리적인 기준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 신문 '플레이백 프레스'의 프랑수아 뒤푸르 주필은 최근 프랑스 주요 신문 편집국장들의 의견을 수렴해, 미국언론인윤리규정에서 제시하는 '사생활 보도 금지'와 '공적 생활 보도' 기준을 이용해 타협점을 찾아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생활 보호'를 원칙으로 하되 "공적인 보도의 필요성이 압도적으로 높아 개인의 사생활 침범을 정당화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비록 사생활이라고 하더라도 보도를 하자는 것"이다.
보도윤리 갖지 않으면 법적통제 불가피
그의 제안대로 이 기준을 '클로제르 게이트'에 적용해보면 어떻게 될까. 먼저 이번 사건의 경우 올랑드나 가예의 사적인 정보를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로 공개해야 할 만큼 압도적인 공익의 필요성이 있었나. 내가 내리는 답은 '없었다'이다.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 말고는 아무런 공적 필요성이 없었다. 이런 질문을 해 볼 수도 있다. 대통령에게 발생할 수 있는 안전상 위협을 경고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사생활을 공개한 것인가. 파파라치의 관심사는 두말할 것도 없고 의 보도에서도 그런 목적의식을 읽을 수 없다. 올랑드가 가예를 만나면서 공금을 써서 정부 돈을 사적인 애정행각에 낭비했다는 증거가 있었나. 혹은 이번 의 보도에서 그런 문제점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 있었나. 그것도 없었다.
미국언론인윤리규정의 원칙들에 비추자면 는 올랑드-가예 보도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프랑스 역시 사생활 보호를 법으로 규정(민법 제9조, 12조)하는 나라다. 유럽 언론윤리헌장(뮌헨헌장)도 제5항에서 사생활을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가예가 를 사생할 침해로 고소한 것도 그 때문이다.
프랑스의 주요 신문 편집국장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인에 대해 보도할 때 사생활과 공적 생활 사이에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한다. 관련 보도에서 늘 언론윤리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인이 대중의 얄팍한 흥미에 영합하거나 또 때로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그런 윤리의식을 접어 둘 경우 자칫 사회를 무질서 상태에 빠뜨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영국 의회는 머독 신문들의 무분별한 도청과 해킹으로 생겨나는 피해를 막기 위해 언론 자율에 맡겼던 보도 규제를 법을 통해 강제하도록 권고한 레비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입법화했다. 프랑스 언론인들은 그런 사례를 상기시키면서 사태가 영국 같은 지경으로 가지 않도록 언론 스스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자율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자유롭게 할 말을 다 해야 할 언론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결국 법적 규제를 받는 상황에 이르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클로제르 게이트'가 그냥 화제거리가 아니라 잊고 있던 언론의 사회적인 책임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장행훈 언론인ㆍ전 신문발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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