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로 촉발된 신흥국 금융불안이 일부 취약 국가들에서 전 세계로 급속히 번지는 양상이다. 당초 위기의 진원지였던 아르헨티나 등을 넘어 경제 펀더멘털이 비교적 양호한 폴란드나 노르웨이 등의 통화까지 크게 출렁이는가 하면, 증시는 선ㆍ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일제히 요동치고 있다. 통화위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지레 위기를 전제로 투자를 조정하는 일종의 '자기 실현적 예언ㆍself-fulfilling prophecy)'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상황 악화에 기름을 부은 건 지난 30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추가 테이퍼링 결정이다. 이미 아르헨티나 등에서 통화위기가 나타난 만큼 신흥국들은 미국이 테이퍼링 속도를 완화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미국이 아랑곳 않고 양적완화 규모를 이달부터 월 650억달러로 100억달러 더 줄이는 자국 중심의 결정을 강행하면서 가까스로 가라앉는 듯 했던 신흥국 금융불안이 오히려 더욱 급격히 확산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극단적인 위기에 휘말릴 가능성은 아직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견고한 수출과 경상수지 흑자, 전체 채권이 채무보다 많은 가운데 단기외채 비중도 27% 선에 불과한 외채 상황, 풍부한 외환보유액 등 경제 기초체력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안조짐이 없는 건 아니다. 이미 설 전에 코스피와 코스닥이 함께 출렁였고, 원ㆍ달러 환율은 하루 10원 이상 등락을 보이기도 했다.
금융위기는 미풍으로 시작됐다가도 시장심리 악화에 따라 걷잡기 어려운 태풍으로 돌변하기 십상이다. 그 과정에서 어느 나라든 국내외 투기세력이 준동해 금융시장에 극도의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정부가 설 연휴 기간인 어제 금융상황점검회의를 연 것도 그런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1997년 같은 전면적 금융위기 가능성은 없다 해도 주요국과의 유동성 공조 등 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안전망을 미리 점검해 둘 필요가 있다. 아울러 예상되는 시장 동요에 대비해 상황에 따른 대응조치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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