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29일 '과거의 악행'이라는 노골적인 표현을 써 가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잘못을 강력 비판했다. 외교 수장인 윤 장관이 이처럼 상대국을 향해 작심발언을 내뱉은 것은 매우 드문 일로 당분간 고위급에서의 외교적 단절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전날 일본 정부가 중ㆍ고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개정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끊임없이 과거사 왜곡에 열을 올리며 주변국을 자극하는 상황에서 섣부른 대화보다는 일본의 태도 변화가 먼저라는 경고의 의미로 해석된다.
윤 장관은 이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고 있는 경기 광주의 '나눔의 집'과 서울 마포의 '우리 집'을 잇따라 찾아 "최근 일부 일본 지도자들이 과거 군국주의 시대의 잘못을 부인하는 말과 행동을 되풀이하면서 역사적 진실마저 호도하려 하고 있다"며 "(일본이) 고노 담화를 통해서 일본군의 관여를 스스로 인정했음에도 최근 이를 부인하고 심지어 과거의 악행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장관은 이어 "며칠 전 황금자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일본 공영방송의 회장이라는 사람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했는데 일본 지도층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 참으로 개탄스럽다"면서 "일본 인사들의 시대착오적 언행에 대해서는 우리뿐 아니라 국제사회 모두 비난하고 있어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 어르신들의 명예가 회복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직 외교부 장관이 위안부 할머니 거처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이번 방문은 당초 예정에 없다가 28일 밤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우경화 폭주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우리 정부의 강경기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 관계자는 "그간 좀처럼 시점을 잡지 못했던 위안부 할머니 거처 방문을 한 것은 이 참에 일본의 잘못을 확실히 부각시키고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오준 유엔대사는 29일 오전(현지시간) 유엔 안보리에서 열린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 공개토의에서 "일본의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인해 동북아의 상호 불신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면서 일본의 역사왜곡 행태를 비판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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