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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1월 30일] 명절, 조금 가벼워도 되지 않을까

입력
2014.01.2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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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내려가느라 열 시간이 넘도록 도로에 갇혔던 게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한국의 명절 풍속도였다.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자식이나, 자식이 오지 않은 부모는 처지를 비관하기도 했다. 2000년이 시작한 지 10년 이상 지난 지금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명절 즈음의 한국 사회는 여전히 떠들썩하다.

한국의 명절에는 산업화와 도시화, 그로 인한 헤어짐의 아픔이 녹아 있다. 당장의 돈벌이 혹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취업과 진학을 이유로 시골이나 지방 소도시의 가난한 부모를 떠나 대도시로 간 자식에게는 부모를 향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있었고 그렇게 자식을 보낸 부모는 안타까움과 외로움에 사로 잡혔다. 한번 떨어진 부모와 자식이 나중에 같이 살거나 물리적 거리를 좁히기는 매우 힘들었다. 연휴가 드문 한국에서 명절은 그렇게 멀어진 부모 혹은 형제와 만나 미안함과 그리움을 지울 수 있는 드문 기회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명절을 그렇게만 보는 것은 공허하고 비현실적이다. 그 이유는 명절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명절이 불편한 사람의 다수는 아내이자 며느리다. 남편이자 아들, 부모이자 시부모도 불편을 느끼지만 아내이자 며느리가 느끼는 불편은 그 크기가 압도적이다. 아내이자 며느리가 느끼는 불편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단순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명절 기간 자신은 음식 만들고 일만 하는데 다른 사람은 그 음식을 먹고 즐기기만 하는 것, 자신을 낳고 길러준 친정 부모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 고작 며칠 동안 겪는 일이니 그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아내이자 며느리가 느끼는 소외감과 차별은 그렇지 않는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일보 문화부의 박선영 기자는 "가정에서의 여성 착취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 제의에 대한 신체적 거부반응"이라고 명절증후군을 규정했다.

며느리의 이런 감정을 젊은 시절의 시어머니도 가졌을 게 틀림없다. 그들 역시 명절 때 친정 부모를 떠올리고, 노동을 당연시하는 시선에 속상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며느리의 감정을 시어머니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명절에 드러나는 우리의 감정은 대체로 이중적이다. 어머니는 결혼한 딸이 어떻게 해서든 친정에 오기를 원하지만 반대로 며느리가 자신의 친정으로 먼저 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 결혼한 딸 역시 명절에 친정에 가려 하면서도 올케가 시댁보다 친정을 우선시 하면 참지 못한다. 잘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남자들의 감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명절은 그래서 그 자체로 이중적일 뿐 아니라 한국 가족제도의 이중성을 담고 있다.

이런 점을 인정한다면 이제 명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조금 유연해질 필요는 있다. 명절에 부모를 멀리하라거나 부모의 외로움을 외면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 구성원 모두 의무적으로 모여야 한다거나, 음식을 산더미처럼 만들어 먹어야 한다거나 그런 것에서 조금만 융통성을 보여도 된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이 큰 부담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명절의 목적 중 하나인 화목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명절 즈음 부부싸움이 급증하고 이혼율마저 치솟는 것은 누군가의 불편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불편을 덮고는 절대 화목을 이룰 수 없다.

지금도 명절 문화가 바뀌고 있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오는 부모가 적지 않고 도시의 여유 있는 부모는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자식 한 둘인 집이 대부분이고 도시 출생자가 많으니 앞으로는 더 많이 달라질 게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라도 좀 더 유연하고 가볍게 명절을 생각해도 되겠다. 그래서 소외되거나 불편한 사람 없이 명절을 맞는다면 그 가족은 더 화목하고 더 행복해질 것이다.

박광희 문화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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