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게 이어졌던 페루와 칠레간 해상경계선 분쟁이 결국 페루의 승리로 결론이 났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7일 태평양 해상경계선을 놓고 맞붙은 페루와 칠레간 영토분쟁에서 페루의 손을 들어줬다.
오랜 분쟁의 역사
양국의 해상경계선 다툼은 2008년 페루가 칠레를 ICJ에 제소하면서 본격화했지만, 이 분쟁의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는다.
페루와 볼리비아 연합군은 1879~1883년 칠레와 '태평양 전쟁'을 벌였다가 패배했다. 이 때문에 페루는 3만8,000㎢ 넓이의 태평양 해역 관할권을 칠레에 넘겼다. 이후 해당 해역과 관련 페루와 칠레는 수차례의 협의와 조약 등을 체결해왔다.
칠레는 1952년 남태평양 해양자원 개발 및 보존에 관해 페루, 칠레, 에콰도르 3개국이 산티아고에 모여 채택한 '산티아고 선언'으로 국제적인 해양 경계선이 이미 정해졌다고 주장했다. 산티아고 선언은 연안에서 200해리 수역까지 주권범위를 확대하는 게 골자였다. 1954년에도 두 나라는 '해상 경계선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칠레는 이들 조약으로 해상 국경선이 확정됐다고 주장하지만, 페루는 국경선이 아니라 어업권을 다룬 것으로 간주했다. 칠레는 이때 정해진 법률을 따라야 한다고 버텼고, 페루는 국제법에 따라 국경선을 다시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제법 맞지 않는 과거 조약 효력 없어
ICJ는 페루와 칠레가 과거에 맺었던 조약 등은 국제법에 부합하지 않는 등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952년 산티아고 선언이 더 이상 국제조약으로써 효력이 없음을 발견했다"면서 "따라서 페루와 칠레 사이의 해상경계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당시 협약들은 당사국들이 해상경계의 존재를 인정하는데 있어 단순히 암묵적인 협의만을 반영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특히 ICJ는 당시 해상경계를 나누는 목적은 어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해상경계선 구분에 대한 확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ICJ는 "산티아고 선언에서의 주장은 당시 국제법과 일치하지 않아 제3국에 강요할 수 없다"며 "그들이 자의적으로 결정한 증거는 합의된 해양 범위라고 결론지을 수 없음을 명시한다"고 밝혔다.
ICJ는 이에 따라 문제의 해역에 대해 칠레의 주권범위를 80해리(148㎞)로 제한하면서, 그 경계 바깥의 풍부한 어장에 대해선 페루의 주권을 폭넓게 인정했다. 페루가 주장한 해상경계선 범위를 70~80% 수용한 것이다. 재판부는 "양국의 협약에서 제출된 지도나 증거물을 비롯해 어업과 해양 활동에 관한 증거도 두루 살펴 보았다"고 전제한 뒤 "양국은 지리학적 좌표를 결정한 이번 법원 판결을 따르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이웃 국가간의 우의를 다졌으면 좋겠다"며 화해를 촉구하기도 했다.
ICJ 판결로 이제 세계에서 가장 어장이 풍부한 해역 가운데 하나인 이곳 3만8,000㎢의 바다가 페루로 귀속될 전망이다. 칠레에서 페루로 넘어간 태평양 해역의 연간 어획량은 2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엇갈린 희비
오얀타 후말라 페루 대통령은 ICJ 판결 직후 TV연설을 통해 "우리가 요구한 사항의 70% 이상을 얻어냈다"며 "우리는 이번 판결을 준수하고 존중할 것이며 칠레 역시 그렇게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만족해 했다. 후말라 대통령은 성명 발표 후 대통령궁 광장에 운집한 시민들에게 "이번 판결은 오늘부터 페루의 역사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페루 수도 리마 중심부의 아르마스 광장에 모인 수백명은 "비바 페루" "정의가 실현됐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열렬히 환호했다.
ICJ 판결 전에 어떤 결과도 존중하겠다고 밝혔던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이는 ICJ에 의한 결정"이라고 규정지으면서도 "이번 조치로 칠레가 이 해역에서 누리는 항해와 항공운항의 자유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칠레에는 통탄할만한 손실"이라고 실망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김연주 인턴기자(이화여대 영문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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