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판의 황태자' 이슬기(27ㆍ현대삼호중공업)가 설 대회 정상 탈환을 노린다.
이슬기는 28일부터 충남 홍성에서 막을 올린 IBK기업은행 설날장사씨름대회 백두급(150㎏ 이하)에 출전한다. 2011년과 2012년 설날장사 2연패를 차지했던 이슬기는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으로 지난해 대회에 불참했다. 2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셈이다.
일단 재활은 충분히 했다. 2013년 11월 천하장사대회 우승으로 재기를 알린 이후 경기 성남에 위치한 재활 센터에서 무릎 부위 보강 훈련에 집중했다. 이슬기는 "천하장사대회 당시 무릎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며 "재활하느라 지난해 12월 왕중왕전에도 나가지 못한 채 설 대회만 바라보고 준비했다"고 밝혔다.
잊혀졌던 이름 석자 확실히 알릴 것
2007년 민속씨름에 데뷔한 이슬기는 2011년 천하장사대회 우승을 비롯해 2011년과 2012년 설날대회 백두급 2연패를 차지하는 등 씨름 최강자로 떠올랐다. 체구에 비해 스피드가 빼어난 이슬기는 기술 씨름으로 모래판을 호령했다. 그러나 2012년 9월 추석대회 출전을 앞두고 무릎 십자인대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재활만 1년이 걸리는 큰 수술이었다.
인고의 시간을 보낸 이슬기는 "수술 이후 몸은 마음대로 안 되고, 함께 뛰던 다른 선수들은 우승을 하니까 경기 자체를 안 봤다"며 "1년 넘게 재활만 하고 씨름이 인기 스포츠도 아니다 보니 내 이름 석자는 잊혀지는 것 같았다"고 돌이켜봤다.
이를 악물고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그는 지난해 9월 추석대회에서 복귀전을 치렀고, 2개월 후인 11월 천하장사대회 우승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이슬기는 "큰 대회에서 우승해 마음이 편해졌다"며 "몸은 아직 60% 상태에 불과하지만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중점을 뒀기 때문에 설 대회도 정상에 올라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다"고 밝혔다.
씨름 부활 책임감 느낀다
이슬기는 2013년 한 해를 만족스럽게 보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다. 천하장사 대회 이후 얼마 안 돼 승부 조작 사태가 터졌다. 가뜩이나 씨름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데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까지 들려와 마음껏 우승 기쁨을 누리지도 못했다.
이슬기는 "안 좋은 일이 곧바로 터져 마음이 편치 않았다"며 "연루된 선수들 가운데 친한 선수들도 있었는데 안타깝기만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지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는 "안 좋은 일을 빨리 털어버리고 화려한 기술과 재미 있는 씨름으로 다시 팬들을 불러모으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슬기는 이태현의 후계자로 지목 받은 씨름판의 몇 안 되는 스타다. 그만큼 씨름 부활에 책임감을 본인 스스로 느끼고 있다. 이슬기는 "경기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화끈한 세리머니도 상황에 따라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절친 경진아, 후회 없이 붙어보자
이슬기와 정경진(27ㆍ창원시청)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같은 학교는 아니었지만 중ㆍ고등학교 시절 친분을 쌓은 뒤 인제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그 동안 체급이 달라 모래판에서 맞붙은 적이 없었는데 정경진이 2009년 실업팀에 입단하고 한라급에서 백두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이 때부터 선의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처음엔 이슬기가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새 체급에 적응력을 높여가던 정경진이 지난해 이슬기가 없는 사이 장사 대회 3연패를 차지하며 모래판의 대세로 떠올랐다. 정경진은 2013 추석대회 준결승에서 복귀전을 치른 이슬기를 2-1로 눌렀다. 이번 설 대회 역시 이슬기의 최대 난적은 정경진이다. 이슬기는 "서로를 잘 알아 맞붙을 때마다 힘든 경기를 한다"며 "매번 (정)경진이와 누가 이기든 후회 없이 하자고 대화를 나눈다. 말은 편하게 하자고 하지만 막상 샅바를 잡으면 이기고 싶은 마음만 생긴다"고 웃어 보였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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