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육신 가운데 한 사람인 하위지(河緯地)의 조카 하원(河原ㆍ1451~1518)에게는 자식이 없는 첩이 있었다. 첩의 이름은 감장(甘莊)이었다.
하원은 정실과 첩실의 지위가 뚜렷이 구분되던 당시, 자신이 죽고 난 뒤 자식도 없는 첩이 외롭게 살까 걱정해 분재기(分財記) 성격의 유서를 한 장 써준다. 자신의 재산 일부를 감장에게 물려줘 생전에 향유하게 한 뒤 본처 권씨 부인의 자식에게 다시 물려주라는 유언이었다. 재산을 다시 물려줄 대상을 정할 권한은 감장에게 전적으로 위임했다. 하원은 서모인 감장을 가장 공경해 받드는 본처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라고 당부함으로써 서모에 대한 효성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게 했다.
과연 감장은 누구에게 재산을 물려줬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이 28일 공개한 진양 하씨 가문의 고문서에 따르면 감장은 '가까이 살며 아침 저녁으로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봉제사에도 정성을 다한' 손자 철민에게 재산을 다시 넘겼다. 하원이 감장에게 유서를 써준 지 13년째 되던 1531년 4월 24일이었다.
감장은 본처 자식간의 재산 분쟁을 우려, 보증인도 3명이나 세우고 양도문서 집필자도 따로 알선하는 등 일을 꼼꼼히 처리했다. 다만 첩의 신분이라 적실의 손자 철민에게 '하철민씨'라고 존칭을 적어 예우했다. 이 일화에서는 서모에 대한 본처 자식들의 효성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려는 하원의 지혜가 드러난다. 감장을 가장 받드는 자식에게 재산이 돌아갈 장치를 마련해 둠으로써 본처 자식들이 서모를 정중히 섬기도록 한 것이다.
김학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실장은 "평소 자주 찾아 뵙고 안부를 여쭈며 효성을 다하는 자손에게 재산을 물려주게 한 것은 지금의 법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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