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를 하는 이모씨는 지난 15일 딸이 입학할 서울 강남구 A초등학교 예비소집에 갔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지난달 받은 취학통지서 안내문에 따라 돌봄교실 신청을 하러 갔더니 학교 측은 "선착순으로 접수 받은 정원 20명이 다 찼다"며 그에게 대기표를 쥐어줬다. 안내문에는 '희망 학생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고 적혀 있다고 따지자 학교 담당자는 "그 안내문은 시교육청이 보낸 것"이라며 "현장 실정은 전혀 모르고 신청만 하면 다 받아준다고 정부가 홍보에만 열을 올려 우리도 답답하다"고 도리어 하소연을 했다.
이 학교는 교실 확보와 교사 배치가 어려워 지난해처럼 돌봄교실을 1개만 운영하기로 했다. 정부의 홍보만 믿고 있던 이씨는 "지금은 가까이 사는 친척이 유치원 종일반이 끝나는 늦은 오후부터 아이를 봐 주고 있는데, 여기에 추가로 방과 후에 돌봐줄 도우미를 구해야 하는지 고민이 크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27일 교육부가 박근혜 대통령 공약인 무상 초등돌봄교실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전국 초등학교 1, 2학년 중 희망하는 학생이면 누구나 오후 5시까지(맞벌이,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 자녀는 밤 10시까지) 무상으로 돌봐준다는 내용이다. 지난해까지는 1~6학년 중 저소득층만 대상이었다. 교육부의 수요조사에 따르면 이용자는 24만6,120명으로 지난해 이용자(15만9,737명)보다 1.54배 늘 전망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앞의 A초교처럼 이미 돌봄교실을 늘리지 않기로 결정하고 아예 접수를 받지 않는 학교들이 많다. 돌봄교실용 교실을 만들 형편이 안 되거나, 운영비를 지원해야 할 시∙도 교육청의 예산이 부족해 돌봄 교사를 뽑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도 파악하지 못한 채 정부가 "희망자는 다 돌봐준다"는 무책임한 약속만 던진 셈이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대왕초는 교내에 돌봄교실용 교실로 만들 공간이 없어 지난해처럼 한 반만 운영하기로 했다. 희망 학생 중 가정형편 등을 고려해 20명만 선발했다. 학교 관계자는 "(공간도 없는데) 학교에 보육 역할까지 떠맡으라는 식"이라며 정부 정책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경기 시흥의 한 초등학교 교사도 "남는 교실이 없어 수업이 일찍 끝나는 저학년 교실을 돌봄교실로 써야 할 상황인데, 그러면 해당 교사의 수업 준비공간이 없어져 정규 교과의 수업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산 지원도 원활하지 않다. 서울 구로구의 한 초등학교는 지난해 한 학급이던 돌봄교실을 올해 네 학급으로 늘릴 계획이지만 아직 교실 개보수를 시작도 못했다. 이 학교의 돌봄교실 담당교사는 "과학실을 개조해 온돌방인 돌봄교실로 만들 생각인데, 예산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교실을 돌봄교실로 함께 쓰는 겸용교실 개보수 공사에는 약 3주, 빈 교실을 리모델링하는 전용 교실 공사는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 하지만 교육부는 올해 늘릴 돌봄교실 3,983개에 대한 시설비 597억원을 확보해놓고도 다음달에나 학교에 배정할 계획이어서 개학 전까지는 공사가 어렵거나 빠듯한 상황이다.
교실뿐만이 아니다. 시설비를 제외한 약 5,000억원의 운영예산은 각 시ㆍ도 교육청이 지원해야 하지만 실제 시ㆍ도 교육청의 예산 증가는 수요에 크게 못 미친다. 경기교육청만 해도 관련 예산은 441억원으로 지난해 421억원보다 20억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충북교육청은 지난해 120억원보다 오히려 8억원 줄었다. 교육부 금용한 방과후학교지원과장은 "추경예산 편성으로 시ㆍ도 교육청의 예산 부족분을 메울 수 있게 하겠다"고 했지만 얼마나 확보가 가능할지 미지수다.
결국 교실이 있어도 교사가 없어 돌봄교실을 늘리지 못하거나 부실하게 운영될 상황이다. 경기 지역의 한 돌봄교실 담당 교사는 "올해 운영비가 한 학급당 1,900만원이었던 지난해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고 들었다"며 "요리 등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교육 프로그램 운영은 앞으로 힘들고, 숙제 봐주기 같은 보육 기능에만 치중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이유로 정부 방침과 달리 놀이 프로그램은 유상으로 운영하겠다는 곳도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전체 학급 수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놀이 프로그램 참가비는 학부모들로부터 충당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돌봄교실 운영비의 절반 정도인 급∙간식비는 학부모 부담인데다, 일부 학교는 프로그램 비용까지 부담을 떠넘겨 '무상 돌봄교실'이란 취지까지 무색해지고 있다.
세종=김지은기자 luna@hk.co.kr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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