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전화 권유 마케팅(텔레마케팅ㆍTM)을 전면 금지한 첫 날인 27일, 보험 카드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은 초상집으로 변했다. 이들 2금융사의 TM 직원들은 온 종일 일손을 놓았고, TM 영업 의존도가 높은 금융사들은 대책회의로 부산했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보험대리점협회 등에서는 아예 단체 행동에까지 나설 기세다.
카드 고객 정보유출 사태 발생 후 금융당국의 입장은 일관됐다. "유출된 고객 정보는 시중에 유통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2차 피해는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공식 입장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언론들이 앞다퉈 불법 정보 유통시장 실태를 보도하고 심지어 유출된 카드3사 정보가 이미 시중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자 지난 주말 반나절 만에 내놓은 대책 중 하나가 TM 영업 일시 중단이었다. 3월까지 금융회사의 전화, 문자메시지(SMS), 이메일 등을 통한 영업을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대출모집인들을 통한 대출 영업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금융계는 폭발 일보 직전이다. 물론 사상 최대 규모 정보유출 사태의 원죄가 있는 카드업계야 불만이 있어도 표현할 처지가 못 된다 쳐도, 다른 금융권은 "왜 우리가 희생양이 돼야 하느냐" 며 잔뜩 격앙돼 있다. 예정대로 3월에 TM 금지 조치가 풀린다 해도, 금융당국의 이번 조치로 고객들은 이미 'TM = 불법'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때문에 향후 TM 영업 자체가 크게 위축될 확률이 높다. 먼저 전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고객과의 대면 영업이 쉽지 않은 대출모집인 역시 설 자리가 거의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금융업권에 분포돼 있는 텔레마케터와 대출모집인 수십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릴 수도 있는 처지가 된 것이다.
정부의 이번 대책이 "일단 무조건 틀어막고 보자"는 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혹평이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보험사 임원은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다고 축산농가에게 모두 문을 닫으라는 대책을 내놓지는 않는다"며 "금융권의 정상 영업 활동까지 무슨 근거로 금지를 하는 건지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악화된 여론의 화살을 비껴가기 위해 텔레마케터와 대출모집인 등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앞서 금융당국 책임론이 불거지자 해당 금융사 경영진을 압박해 직접 연관성이 없는 임원들까지 일괄 사퇴하도록 종용하는 등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금융당국의 이번 조치를 바라보는 여론도 곱지 않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김주형(44)씨는 "부작용 없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정교한 대책을 내놓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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