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가 26일 종교의 자유와 여성권리 보호를 명시한 새 헌법을 제정했다. 민주화혁명 이후 3년이 지났지만 아랍 각국의 사회개혁이 답보하는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헌법이 탄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튀니지 제헌의회는 이날 새 헌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200표, 반대 4표, 기권 12표로 통과시켰다. 튀니지가 프랑스에서 독립한 지 3년 만인 1959년 제정한 현행 헌법을 대체할 새 헌법은 별도의 국민투표 없이 대통령, 총리, 제헌의회 의장의 서명을 거쳐 발효된다. 헌법안이 압도적 표차로 통과되자 의원들은 대형 국기를 펼치며 자축했다. 무스타파 벤 자파르 제헌의회 의장은 "새 헌법은 완벽하진 않지만 합의로 이뤄낸 성과로 튀니지 민주화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46개 조항으로 이뤄진 새 헌법은 제6조에 "국가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명시하는 한편 "(무슬림)배교자에 대한 비난, 이들에 대한 혐오ㆍ폭력 선동을 금한다"고 규정했다. 구헌법에 "자유로운 신앙 활동 보장"으로 표현됐던 종교의 자유를 명확히 하면서 배교자 보호 규정을 추가한 것이다. "우리는 신의 은총 아래 헌법을 만들었다"는 전문과 "튀니지는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주권국가"라는 제1조는 구헌법을 따랐다.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법의 근간으로 한다"는 전문으로 시작하는 대부분의 아랍국 헌법과는 차이가 크다. 헌법학자 슬림 로흐마니는 AP통신에 "이슬람 국가의 정체성과 인권, 민주적 통치를 중시하는 모더니티가 역사적인 타협을 봤다"고 평가했다.
제헌의회는 여성 권리 보호를 위해 "국가는 의회에서 여성과 남성 대표가 동수가 되도록 노력한다"(제45조)라는 획기적인 조항을 담았다. 남녀 관계를 상보적이라고 규정하자는 보수적 주장을 물리치고 "남성과 여성 공히 모든 시민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며 법 앞에서 차별 없이 평등하다"(제20조)고 명문화했다. 표현 및 언론ㆍ출판의 자유(제30조), 파업의 자유(제35조) 등 기본권도 보장했다.
정치와 관련해서 헌법은 야당을 "의회 구성의 필수요소"(제59조)로 규정하면서 재정위원회, 외교관계조사위원회 의장직을 야당에 배정하도록 의무화했다. 대통령의 내각해산권을 박탈하는 대신 의회는 대통령이 제출하는 내각불신임안을 반드시 처리하도록 해 행정부와 입법부 권력의 균형을 맞춘 점도 주목된다.
튀니지의 새 헌법 제정으로 3년 전 '아랍의 봄'으로 표출됐던 중동의 민주화 열망이 다시 불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튀니지의 민주화 성과가 다른 아랍국을 앞서는 이유로는 강한 자유주의ㆍ세속주의 전통이 거론된다. 주목할 점은 새 헌법이 혁명 이후 집권한 이슬람정당 엔나흐당과 세속주의 야권이 제헌의회 구성 이후 2년 넘게 이견을 조정하며 만든 타협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7월 야당 지도자 무함마드 브라흐미가 암살되면서 제헌 작업이 일시 중단됐지만 엔나흐당이 야권의 내각 퇴진 요구를 수용하며 위기를 수습했다. 튀니지 정파들의 타협은 아랍의 봄으로 탄생한 신생 민주주의가 경제 침체, 정치적 양극화를 딛고 민주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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