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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월 27일] 메리 제인 펌프스

입력
2014.01.2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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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 바로 옆에 비상계단이 있다. 계단으로 통하는 철문은 보통 닫혀 있다. 그런데 그 철문이 빼꼼히 열려 있었다. 문틈으로 거뭇한 것이 보였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나는 그것의 정체를 확인해 보았다. 구두였다. 굽이 15cm는 될 법한 메리 제인 펌프스. 사이즈는 225. 누가 벗어둔 걸까? 225라면 정말 작은 발이다. 아담한 키의 어른이거나 열다섯 이상은 되지 않은 소녀의 발일 것이다. 높은 굽으로는 키 혹은 나이를 감추고 싶었겠지 아마. 얼마 전 붕어빵 한 봉지가 역시 문턱에 놓여있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붕어빵과 구두. 한 사람이라면 꼬마아가씨일 가능성이 높았다. 짓궂은 마음이 동했다. 쓰레기를 버리고 오면서 구두 한 짝을 숨겼다. 장난이 심한가 싶어 원래대로 돌려놓으려 나간 것은 한 시간쯤 지난 후였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남은 한 짝이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라진 한 짝을 찾아보려는 마음과 누군가 내 소행을 지켜본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손에 든 한 짝이나마 있던 자리에 얌전히 두고 들어오는 나의 발은 고양이걸음이었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들키기 않기 위해 숨겨둔 구두가 내 눈에 들킨 건 줄 알았는데, 내가 되려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았을까 마음이 졸아붙는 상황이라니. 다음날 다시 나가보았다. 그 한 짝도 사라지고 없었다. 주인의 발이 무사히 찾아간 거겠지? 신데렐라를 스친 기분이었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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