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발(發) 경제위기 공포에 전세계가 술렁이고 있다. 미국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로 미 달러가 신흥국에서 빠져나가는 움직임을 보이자 지난주 외환보유액이 부족한 아르헨티나, 터키 등의 통화가치가 폭락했다. 그 파장이 다른 신흥국으로 옮겨갈 조짐이 나타나면서 1997년 동남아 외환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26일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 주말 위기 징후를 가리키는 각종 글로벌 지표들이 일제히 치솟았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미국 변동성지수(VIX)가 24일(현지시간) 18.1로 이틀 새 41% 폭등했고, 신흥국 가산금리(EMBI)는 3.42%포인트(22일) →3.58%포인트(23일) →3.68%포인트(24일) 등으로 수직 상승했다. 진원지인 아르헨티나는 23일 하루 동안 페소화 가치가 14% 급락한 데 이어 24일에도 1.4% 추가 하락했다. 아르헨티나가 13년 만에 또 다시 디폴트(국가 부도)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는 터키(리라), 러시아(루블), 남아프리카공화국(랜드), 브라질(헤알) 등 다른 신흥국 통화 가치 연쇄 하락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원화 환율도 큰 폭은 아니지만 연일 상승(원화가치 하락)하면서 24일 달러당 환율이 1,080원 벽을 넘어섰다.
미국 테이퍼링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는 일찌감치 제기됐던 상황. 시장에선 '취약 5개국(Fragile Five)' '벼랑 끝 8개국(Edge Eight)' 등 테이퍼링에 따른 살생부까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여기에 중국 경기둔화가 예상보다 더 가파를 수 있다는 우려까지 겹치면서 아르헨티나, 남아공, 러시아 등 원자재 수출 국가들의 취약성이 더 부각되는 양상이다.
아직까지는 일부 신흥국의 금융위기가 전세계적으로 전염될 가능성은 낮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번 위기는 대외적인 요인과 더불어 해당국의 정정 불안 등 내부 요인이 맞물려 있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교적 충분한 외환보유액(3,465억달러)을 보유한데다 경제 펀더멘털도 튼튼한 편이어서 직접적인 타격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불안은 올해 내내 세계경제 회복의 고비마다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휴일인 이날 정부가 긴급 경제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어 ▦테이퍼링이 금년말이나 내년초까지 지속될 이슈이고 ▦중국 자금시장 문제도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을 들며 "신흥국 불안은 상당 기간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익주 국제금융센터 원장은 "앞으로 일본, 유럽 등 다른 요인들이 어떻게 가세하느냐에 따라 정말 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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