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담배회사 상대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은 4건이 있지만 한번도 승소한 적이 없다. 흡연으로 인해 개인이 질병을 앓게 됐다는 인과성, 담배회사의 위법성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인이 아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나선 이번 소송은 이런 쟁점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4일 건보공단이 담배소송 방침을 의결한 것은 국민건강보험법의 구상권 청구 규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구상권은 제3자의 행위 탓에 건강보험 진료비가 쓰였다면 건보공단이 대신 그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말한다.
건보공단의 구상권 청구 근거는 지난해 8월 발표한 130만명을 대상으로 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다.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활용해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의료비 부담을 분석한 결과 남성 흡연자의 경우 후두암 발생 위험 정도가 비흡연자의 6.5배에 달했다. 흡연으로 인한 각종 진료비로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이 연간 1조6,914억원(2011년 기준)에 달한다.
안선영 건보공단 법무지원실 선임전문연구위원(변호사)은 "빅데이터는 공단이 가진 방대한 진료내역 검진자료를 토대로 한 과학적이고 체계적 자료"라며 "흡연 피해자 개인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이미 법원이 일부 암에 대해 흡연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했기 때문에 빅데이터를 더하면 입증이 더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9년 국내에서 2번째로 담배소송을 제기한 폐암 환자와 가족 31명의 소송에서 2심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폐암 중 소세포암'과 '후두암 중 편평세포암'은 흡연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했었다.
건보공단은 소세포 폐암과 편평세포 후두암 환자 중 흡연 여부, 흡연 기간 등을 따져 흡연이 폐암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환자군을 소송대상으로 결정할 예정이다. 2010년 두 암에 대해 지출한 진료비는 약 600억원인데, 기간을 2002~2012년으로 잡고 환자 대상도 가장 넓게 잡았을 때 청구 금액이 약 3,300억원이다.
하지만 인과관계 입증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빅데이터 자료를 통해 통계적인 인과관계는 밝힐 수 있을지 몰라도 각각의 개인을 놓고 생활습관, 직업, 식습관, 가정환경, 유전적 요인 등 다른 요인이 아닌 흡연이 질병의 원인임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흡연하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일반적 인과관계는 입증되겠지만, 폐암환자의 발병 원인이 다른 모든 개인적 요인을 배제하고 오로지 흡연 때문이라고 어떻게 증명하냐"고 반문했다.
담배회사의 위법행위를 어떻게 입증하느냐는 것은 또 다른 쟁점이다. 흡연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증명돼도 현행법 상 합법적으로 담배를 제조 판매하는 담배회사의 위법성이 없다면 손해배상청구가 불가능하다. 2호 담배소송의 2심 판결에서 원고들이 패소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담배협회 측은 "담배는 제조상 하자가 없고 제조과정에서 불법행위 역시 없다"며 "법원에서도 국내 흡연소송 4건 모두 담배회사의 위법행위가 없다고 판결했다"고 말했다.
과거 담배소송의 원고들은 담배회사들이 니코틴의 중독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첨가물을 넣었다거나, '담배가 해롭지 않다'는 내용의 교육용 문건을 만들었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했었다. 국내 최초로 담배소송을 맡아 15년째 담배회사와 소송을 벌이고 있는 배금자 변호사는 "원고 측이 담배회사의 니코틴 조작을 입증하기 위해 600종에 달하는 담배 첨가물 내역을 요구했지만 담배회사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240종만 공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건보공단 측은 지난 소송들과 달리 공공기관에서 제기한 첫 소송인만큼 미국의 사례에서처럼 담배회사의 내부고발자로 인한 내부 문건이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안선영 건보공단 법무지원실 선임전문연구위원은 "담배회사의 위법행위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공단이 소송 제기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알려지면서 담배회사에서 퇴직한 내부고발자들의 연락이 이미 오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제기된 담배 소송은 총 4건으로 하급심에서 아직 승소한 적은 없다. 현재 1건은 1심에서 원고 패소해 종결됐고 이 중 2건은 대법원에, 1건은 고등법원에 각각 계류돼 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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