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스물 두 살 차다. 아버지와 아들 뻘이다. 하지만 둘은 든든한 동료 사이다. 국내 프로축구 K리그 전남의 베테랑 수문장 김병지(43)와 2년 차 수비수 이중권(21)이 이 흥미로운 조합의 주인공들이다. 둘은 전훈지인 태국 방콕에서 굵은 땀을 흘리면서 훈련에 전념하고 있다. 24일 김병지와 이중권을 만나 22년 나이 차가 만들어낸 스토리를 들어봤다.
"형보다 삼촌이 낫죠"
이중권은 김병지를 삼촌으로 부른다. 숙소에서도 경기장에서도 호칭은 같다. 삼촌이다.
이중권은 "작년 입단했을 때 팀에서 '삼촌으로 통일하라'고 해서 삼촌으로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큰 아들이 열 여섯 살인 김병지도 삼촌이란 호칭이 싫지가 않다. 35세부터 삼촌으로 불려서 형보다는 삼촌이 더 편하단다.
"FC 서울에 있을 때는 박주영(아스널)이 기준이었어요. 박주영 밑으로는 모두 삼촌이라고 불렀죠. 저한테 형이라고 부르면 더 어색하지 않을까요. (웃으면서)이청용(볼턴)과 기성용(선덜랜드)도 제 조카였습니다."
이번에는 조카 차례
이중권은 지난해 김병지한테 신세를 졌다. 작년 9월11일 성남과의 K리그 클래식 28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수비 도중 반칙을 범해 페널티킥을 내줬다. 작년 미드필더와 수비수로 11경기를 소화한 이중권은 "왼쪽 수비 경험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페널티킥까지 내줘 '멘붕'이었다"면서 "근데, 삼촌이 구세주였다. 축구장에 오셨던 부모님도 삼촌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할 정도였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믿음직한 김병지가 페널티킥을 막아낸 것.
이중권은 김병지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수비할 때 자세나 위치 선정, 중앙 수비수와의 호흡 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이제는 김병지를 도와주는 건실한 측면 수비수로 성장했다.
"작년에는 제가 삼촌한테 신세를 졌으니 올해는 그것을 갚아야죠. 몸을 날려서라도 골을 막을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습니다."
삼촌과 조카는 닮았다
이중권은 김병지를 멘토로 여겼다. 20년 동안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체중 조절(78.5㎏도 완벽하게 해 낸 대선배를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운다고.
"삼촌은 정말 멋진 분입니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항상 생각을 하죠. 운동장에서는 축구 얘기 밖에 안하세요. 쉬는 날 가족과 함께 하는 모습도 멋있고요."
까마득한 후배의 칭찬에 머쓱한 표정을 짓던 김병지도 조카 자랑에 나섰다. 김병지는 이중권에 대해 "성실하고 착하고 꾸준한 선수다.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고, 축구에 대한 이해력과 센스가 있다"면서 "대기만성형 선수인 것 같다. 꾸준하게 오래갈 스타일"이라고 칭찬했다.
0.8을 위하여
김병지와 이중권의 목표는 0.8을 사수하는 것이다. 경기 당 평균 실점률을 0.8 이하로만 막는다면 팀이 상위 스플릿으로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김병지는 "팀 목표가 개인 목표다. 작년에 평균 1.1실점을 했는데 물론 쉽진 않겠지만 0.8점대로 묶고 싶다. 이 목표를 이룬다면 3위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자신했다.
이중권도 "삼촌을 도와서 팀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다. 무조건 6강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지원사격을 했다.
삼촌과 조카는 2014년을 '전남 부활의 해'로 선포했다. 90년대 중ㆍ후반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재현하자고 의기투합했다. 또 서로에게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중근아, 올 해는 25경기 이상을 뛰자. 감독님이 주시는 임무를 100% 완수해서 팀 성적을 끌어올리자. 또 17세 이하 대표팀 이후 다시 한번 태극마크도 달았으면 한다."
"삼촌도 올 해 목표로 잡으신 거 다 이루셨으면 좋겠고요. 팀이 6강에 올라갈 수 있도록 같이 힘을 내주세요. 파이팅입니다."
노우래기자 sport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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